▲덕유산 능선(Pro160NS)적상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유산의 능선. 오른쪽 제일 높은 곳이 향적봉이다. 종주는 그 오른편으로 화면을 벗어나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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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부상 후 수술, 그 뒤 재활의 시간을 가지면서 언제 다시 산을 밟으려나 했다. 꾸준히 자극을 늘려가면서 한계점을 체크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엉뚱한 계기로 무릎이 견뎌 줄 역치값이 꽤나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학여행 때 학생들을 인솔해서 한라산 정상을 찍고 내려온 일이었다. 19Km의 당일 산행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학생 인솔자라는 책임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그날 이후 그동안 미뤄왔던 긴 산행을 조금씩 시작했다.
능선이 부드러운 덕유산은 시도해볼 만 했다. 다양한 종주 구간들 중 최고로 인정받는, 육십령에서 출발하여 향적봉을 넘어 내려가는 코스는 아니었어도 총합 22km에 달하는, 종주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경로를 선택했다. 1박 2일로도 소화할 수 있는 길이었지만 2박 3일로 계획을 짰다. 가을의 정수를 보다 천천히 마음에 새기고 싶었고 별 촬영의 기회를 두 번 가져서 실패율을 좀 더 낮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래는 2박 3일간 걸었던 코스.
황점마을에서 시작(16:00) - 삿갓재 대피소(1박) - 무룡산 - 동엽령 - 백암봉 - 중봉 - 향적봉(1박) - 백련사 - 삼공주차창(16:30)이 기사에서는 황점마을에서 백암봉까지의 여정을 다루고자 한다.
모포를 빌리는 돈이 아까워 침낭을 챙겼고 5끼니 식량, 물, 옷가지 등을 넣은 후 필름 10롤에 바디만 1660g인 카메라 하나와 렌즈 3개를 넣었다. 별 촬영을 위해, 접어도 68cm가 되는 대형 삼각대도 하나 챙겼다. 보통의 짐에서 10kg는 더 얹은 셈이다. 그래도 중간에 있는 대피소 덕에 야영 짐을 넣지 않아도 되어서 평소보다는 나름 가벼운 편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스틱을 샀다.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니 스틱을 사용할 생각 자체를 못 했었는데 이번 산행에서는 꼭 필요할 것 같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스틱은 이번 산행에서 1등 공신이나 다름없었다. 오르막에서 온몸의 힘을 함께 사용하니 내리막에서 사용할 힘이 축적되었고 내리막에서는 다리에 쏠리는 하중이 분산되어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에도 무릎이 상하지 않고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황점마을에서 삿갓재 대피소로오후 네시가 되어서야 들머리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만약 아침에 출발할 수 있었다면 육십령에서 시작했거나, 황점마을에서 시작했더라도 월성계곡을 따라 월성재로 올라 삿갓재를 거쳐 대피소로 갔을 것이다. 이날 선택한 코스는 황골계곡을 따라가는 길이었는데 서북 방향으로 올라 처음으로 주 능선을 만나면 바로 그곳에 삿갓재 대피소가 위치해 있다.
짐이 가볍다면 한 시간 반 정도에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코스였다. 오르막도 심하지 않았고 바로 왼쪽으로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어서 피로감을 덜어주었다. 본격적인 갈수기는 아니었지만, 가을비가 내린 지 꽤 된 시점이었는데도 계곡물이 풍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