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자료사진)
flickr
이 구인공고에 지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아주 흔합니다. 여성이 거의 대다수인 '아내'들입니다.
호주의 정치평론가인 애너벨 크랩은 책 <아내가뭄>에서 성별에 따른 불평등의 원인이 가사 노동 불평등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위 구인공고와 같은 일을 해주는 아내가 있었기에 남성들이 사회에서 주도적 위치에 올랐다는 것을 다양한 통계자료를 통해 보여줍니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보면 이는 호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사회의 공통적인 경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양성평등 혁명이 일어났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혁명적인 부분은 주로 '유급 여성 노동자의 증가'로 기업의 계산 장부 한쪽에서만 일어났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은 가정에서 여전히 무급 노동을 하고 있으며 남성들은 여성의 역할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특히 일하는 엄마에게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마치 직업이 없는 사람처럼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가 없는 사람처럼 일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만약 두 곳에서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양쪽 모두에서 실패한 것처럼 느낀다." (40쪽)성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을 일터로 끌어들여 주류에 편입될 수 있도록 할 것이 아니라 남성을 일터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애너벨 크랩이 썼듯이 지금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여자들, 일터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남자들, 아버지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 아이들" 모두가 패자인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지만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가정 내 노동 세계에 남성들이 진입하지 않았기(혹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남성들에겐 가사 노동을 권하지 않습니다.
직장에선 남성들이 육아 휴직을 사용하거나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면 부정적으로 봅니다. 가족을 돌보려는 남성들은 일터에서 괴롭힘을 당하기도 합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처럼 문제 해결 방법의 관점을 여성의 사회진출에서 남성의 가정 진입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호주의 남성들이 '결혼 프리미엄'을 누려왔다고 했는데 지구 반대편에 살아가는 저 역시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결혼한 남자를 더 능력있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아내가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리면서 남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낳아주면서 남자들의 노동 능력을 향상시켜'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주로 남자들이 유급 노동을, 여자들이 무급 노동을 담당한다. 그래서 남편들은 일터에서 더욱 잘나가게 되고 지루하고 고된 그 모든 허드렛일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깔끔하게 정리된 가정에서 영양가 높은 음식, 깨끗한 옷, 안정감과 목표 의식, 아이들, 엘리베이터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상사와 무리 없이 나눌 수 있는 대화 주제 등을 모조리 얻는다. 그동안 이러한 합의를 통해 밥벌이에 나설 필요가 없어진 아내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학예회가 오늘 밤인지 다음 주인지 알아두고, 우유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등 무급 노동에 능숙해진다." (175쪽)우리는 은연중에 남자와 여자가 각각 더 잘하는 것이 있다는 편견을 가지게 됩니다. 저자는 '여성스러운 일, 남성스러운 일' 등에 대한 편견, 여성의 최우선 순위는 집이라는 편견, 남편은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아내가 살림과 육아를 책임지는 게 더 낫다는 편견 등을 꼬집습니다. 이와 같은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체적으로 집안일과 육아에 대한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누가 무슨 일을 맡아야 한다는 식의 관습적인 행동 패턴은 남녀 모두를 괴롭힌다. (중략) 일반적으로 여성이 집안일과 육아에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혹시 여성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생각에 의심이 든다면, 텔레비전 광고를 한번 보라. 바닥 세제, 화장실용 세제, 유리창용 세제, 지퍼백, 기저귀, 아기용 물티슈, 분유, 식빵 광고에 거시기가 달린 사람이 나오던가?그런데 여자들이 집안일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 집안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대부분 여자 잘못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이가 보살핌을 제대로 못 받거나 집이 더러우면, 부주의하다면서 여성을 맹비난한다. 여성과 남성이 청결에 대해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남녀의 득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212쪽)남녀의 득실이 서로 다르다는 저자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가사 노동에 조금이나마 참여하려고 노력하면서 아내의 높은 기준을 언급하며 불평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집안일을 주로 하게 되는 아내의 기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에게 기준을 맞춰달라는 요구가 아내에겐 또 하나의 스트레스일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빠 육아휴직, 노르웨이에서 배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