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배산서원은 일제강점기 '유교의 종교화'를 폈던 유교개혁사상가 진암(眞庵) 이병헌(李柄憲1870~1940) 선생이 건립을 발의했다.
김종신
'합천 이씨 세거지'와 '배산서원(培山書院) 입구'라 적힌 빗돌 옆에 배양마을 표지석이 작게 서 있다. 화살표 방향으로 200m 마을로 들어가면 홍살문이 나온다. 여느 홍살문과 달리 가운데 태극문양 좌우에 녹색의 대나무와 책 같은 그림이 한 쌍씩 그려져 낯설다. 홍살문에 들어서면 오른쪽 앙상한 은행나무 옆에 '복원유교지본산(復元儒敎之本山)'이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청일전쟁 패배 이후 중국 내에서 양무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사회 전반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변법자강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을 벌인 캉유웨이(강유위, 康有爲)의 유일한 손자가 배산서원을 방문해 쓴 글을 새긴 것이다.
배산서원 건립을 발의한 진암(眞庵) 이병헌(李柄憲, 1870~1940) 선생은 면우 곽종석 선생의 제자다. 일제강점기에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고 백성이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전통 유교를 종교화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던 유교개혁 사상가다.
그는 1913년부터 1925년까지 5차에 걸쳐 중국을 찾아가 강유위를 방문해 공자교에 대한 기본 노선을 공부하고 공자교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금문경학(今文經學)을 배웠다. 다섯차례나 오가면서 캉유웨이에게 공자교에 대한 기본 노선을 전수받고 공자교의 사상적 기반인 금문경학(今文經學)을 배웠다.
향교식(鄕校式) 유교가 아닌 종교식 유교를 보급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1923년 현재의 배산서원에 공자의 문묘(文廟)를 세우고 제향을 올렸다. 문묘 아래 도동사(道東祠)를 짓고, 퇴계 이황(李滉), 남명(南冥) 조식(曺植), 청향당(淸香堂) 이원(李源)을 봉향(奉享)하고, 왼쪽에 죽각(竹閣) 이광우(李光友)를 종향(從享)했다. 주자를 봉향(奉享)하지 않아 당시 유림의 반대로 공자교 운동은 더는 확산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