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돌베개
저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기에 시골살이를 아이가 어떻게 느끼고 푸름이나 젊은이가 어떻게 받아들일 만한지를 몸으로 느끼지 않았습니다. <탈향과 귀향 사이에서>(돌베개 펴냄)라는 책에 나오는 중국 젊은 농민공들 마음을 제 살갗으로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저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기에 도시살이가 어떠한가는 살갗으로 느끼거나 알아요.
시골에서는 도시가 '한결 깨끗하거나 밝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작 도시는 그리 깨끗하거나 밝다고 하기 어려워요. 깨끗하거나 밝아 보이도록 하려고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청소를 하고 기계를 돌리고 시설을 지키지요. '공장 생산라인'은 참말로 깨끗하거나 밝을까요? 공장에서 쓰는 화학약품이 참말로 깨끗하거나 밝을까요?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물(폐수)이나 바람(매연)이 참말로 깨끗하거나 밝을까요?
허세는 3층짜리 주택이나 결혼식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잉산의 농촌에서는 각종 경조사의 선물비용이 농민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63∼64쪽)
농민들이 외지로 나가 일하기 전에는 잉산 농민들의 소득에 큰 차이가 없었다. 마을 내 경제적 계층의 차이도 그다지 명확한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많은 농민들이 외지로 나가 일을 하면서부터 일부 농민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소득을 바탕으로 마을 내 상류층이나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들의 명성과 지위를 높여주었다. (65쪽)인문책 <탈향과 귀향 사이에서>는 중국에서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수천만, 아니 몇 억에 이르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중국은 10억을 웃도는 사람이 사는 터라 한국하고 대면 숫자부터 다릅니다. 중국에서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숫자는 제대로 통계로 잡기 힘들다지만 몇 억이라지요. 그리고 금융 위기 바람이 한 번 불면 수천만에 이르는 실업자가 생긴다 하고요.
숫자만 보아도 깜짝 놀랄 만하지만, 숫자 하나로만 놀랄 만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중국 곡식이나 남새가 많이 들어오는데, 중국은 이렇게 시골사람이 도시에 공장 노동자로 잔뜩 떠나도 '중국 논밭을 일구거나 지킬 사람'이 제대로 남아날 수 있을까요?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한국에서 그토록 미움을 받는 '중국 곡식이나 남새'가 끊어질 날은 멀지 않을 듯해요. 이러면 한국은 자급자족이 거의 안 되는 나라인 탓에 무엇보다 식량 위기를 맞이하겠지요.
도시의 삶은 청춘의 낭만으로 가득하기에 그 누구도 선뜻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TV드라마가 보여주는 모습이 도시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혹 그런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77쪽)
중국 제조업이 이미 변곡점에 도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농민공이 그렇게 될 것이라 가정해서는 안 된다. 소득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온 가족이 도시로 이주한다 하더라도 편안한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소득과 지출이 균형을 잃었을 때, 그 가족의 관계가 좋을 수 있을까? (84쪽)중국에서는 돈을 벌려고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다는데, 이렇게 버는 돈은 으레 시골에 으리으리한 새집을 짓거나 겉치레를 하는 데에 쓴다고 합니다. 삶을 알뜰히 가꾸거나 한결 아름답거나 느긋한 살림살이가 아닌, 남보다 잘나 보이도록 하는 데에 쓴다고 하는데, 이는 무엇보다 방송(텔레비전) 탓이 크다고 해요. 날이면 날마다 방송에서 '시골보다 훨씬 멋져 보인다는 첨단문명과 소비문화'가 흘러넘치기에 시골사람은 이 같은 도시 문명이나 문화를 시골에서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일쑤라고 합니다.
이를 한국에 대 보면, 한국은 지난 1970∼1980년대 새마을운동 바람으로 크게 몸살을 앓았어요. 시골사람을 도시로 끌어당겨서 공장을 돌렸고, 공장 노동자는 처음에는 '도시 빈민'이었다가 차츰 도시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러면서 이 나라 시골은 텅 비는 얼거리가 되었어요. 이동안 시골은 농약하고 비료하고 비닐하고 기계가 자리를 차지합니다. 도시는 도시대로 사람으로 넘치고, 시골은 시골대로 싸늘하면서 메마른 모습이 된다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