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정과 충재1526년 충재 권벌이 지은 정자와 서재
김정봉
이렇다 보니 권벌과 관계를 맺은 후배와 후대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일찍이 미수 허목(1595-1682)은 충재가 세운 청암정을 마음에 두었지만 몸이 늙고 길이 멀어 살아서 와보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청암수석(靑巖水石)' 글씨를 보내 달랬고 퇴계(1501-1570)는 65세 때 이곳에 들러 멋진 시를 남겼다. 청암정 안에는 채제공(1720-1799)의 글과 남명 조식(1501-1572)의 '청암정' 글씨가 달려있다. 시대를 초월해 이들끼리 쌓은 정이 두터워 보였다.
한편 권벌을 배향한 삼계서원은 1588년 안동부사로 있던 동강 김우옹(1540-1603)이 짓고 한강 정구(1543-1620)가 당호를 지은 것으로, 이들이 남긴 흔적 또한 가볍지 않다. 청암정에서 경상좌도를 대표하는 퇴계와 경상우도를 대표하는 남명을 한 공간에서 만나고, 삼계서원에서 성주(星州)의 양강(兩岡)이라 불리며 추앙받는 동강(東岡)과 한강(寒岡)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설렌다. 봉화에서 닭실을 제일 먼저 찾은 이유다.
닭실마을 가는 길삼계서원 느티나무 아래에서 설렌 마음을 잠시 누그리며 석천계곡에 들렀다. 계곡을 거슬러 닭실로 가는 기막힌 길이다. 물기 머금은 촉촉한 단풍은 사람들 발길에 치여 볼 생각조차 못 했지만, 푸석한 빛바랜 단풍에라도 푹 빠져보고 싶은 마음에 재를 넘는 큰길을 버리고 이 계곡을 택했다.
산과 내를 오가는 좋은 길이다. 신선이 사는 세상 끝의 길 같다. 아닌 게 아니라 계곡의 문패처럼 큼직한 바위에 '청하동천(靑霞洞天)' 글씨를 새겼다.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절경을 시샘한 듯, 도깨비들이 이곳에 몰려와 정사에서 공부하던 서생들을 괴롭히자 보다 못한 권벌의 5대손 권두응이 이 글씨를 새기고 붉게 칠해 도깨비를 쫓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