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이다. 20여 년 전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개발 바람이 분 적이 있었다. 이미 그 전부터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는 심심찮게 인구에 회자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여론화 된 것은 아마도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그 때가 처음일 것이다. 낙후된 지역경제의 활성화가 목적이었다. 지리산과 접한 경상도 전라도의 시.군에서 사업성조사를 심도 있게 진행했었다. 대피소가 있는 벽소령과 장터목 등이 종착점이었다. 물론 산을 찾는 사람들은 반대했다. 장터목에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지리산의 참사였다.
북한산도 그랬다. 지리산 케이블카 붐이 식자 이번에는 서울시 강북구가 중심이 되어 북한산을 타깃으로 결기를 세웠다. 2007년이었다. 남산처럼 북한산도 관광지로 개발하자는 것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개발론자인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고부터 더욱 힘을 받기 시작했다. 정말 자고 일어나면 보현봉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주말 북한산에는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수많은 현수막과 팻말과 1인 시위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수많은 등산객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데 케이블카까지 놓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혀를 차는 등산객이 많았고, 개중에 몇몇 등산객은 케이블카 설치를 기정사실화하는 루머를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지리산과 북한산에서 케이블카는 볼 수 없다. 개발의 화신인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서도 케이블카 사업은 쉽게 풀어갈 수 없었다. 그만큼 추진하는데 걸림돌이 많고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문화재청과 환경부와 산림청의 심사를 거쳐야 하고, 이념적 성향을 떠나 무엇보다 보수(?)적인 산을 찾는 사람들을 설득할 명분이 충분하지 못했는지 모른다. 북한산에서 관광과 등산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산을 몇 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인식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건강을 위해서도 등산은 장려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그러고 보면 덕유산 케이블카는 용케 살아남았다. 물론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아니었다면 그놈은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덕유산은 지리산과 설악산에 비해 접근성이나 내방객 수로 볼 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케이블카를 설치할 이유가 없었다. 전혀 생각지도 않고 누구도 바라지 않는 케이블카가 설치된 것이다. 사업의 수익성에서 자유로운 국책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전국의 국립공원에 접한 지자체에서 갖가지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설악산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현재 설악산 케이블카는 지리산과 북한산의 이슈를 능가하는 뜨거운 열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1차 관문인 문화재위원회에서 불허한 사안을 양양군에서 국민권익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하였고,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를 인용 재결의를 하였으며 결국 문화재청에서 허가를 내준 것이다.
이례가 없는 결정이었다. 아직도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산림청을 통과해야 하지만 지리산과 북한산에서 이루지 못한 진일보한 성과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더구나 환경부에서 이 사업의 초반부터 개입했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매우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가장 큰 걸림돌인 문화재청을 통과한 것이니까 말이다.
"설악산은 1965년에 천연보호구역,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중략... 문화재위원회는 1982년 설악산 케이블카 신청 건에 대해 '희귀자연과 자연경관이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으므로, 이는 불가'하다고 결정했다. 국립공원위원회는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설악산 케이블카 불가 결정을 내리는데 이 또한 1982년 문화재위원회의 의견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양양군의 세 번째 시도는 2012년과 2013년의 경우와 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전경련, 문화체육관광부와 환경부, 양양군이 공모하면서 위기감은 깊었다. 전경련은 2014년 6월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와 승마공원을 포함한 산지관광활성화방안을 발표한다. 그해 8월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때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대통령에게 건의된다. 문체부와 환경부는 양양군이 참여하는 '친환경 케이블카 확충 TF'를 주도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업 조기 추진'을 직접 지시한다. 양양군은 2015년 4월 사업신청서를 다시 제출하고, 환경부는 국립공원위원회를 열어 그해 8월 7가지 부대조건을 걸고 조건부 승인을 한다. 부정한 권력과 행정, 재벌이 결탁해 설악산 정상의 유원지 계획을 밀어붙인 것이다."
-경향신문 2017년 11월 26일[NGO발언대] : 녹색연합 사무처장 윤상문
인간의 등쌀에 고통받는 설악산
지질학적으로 볼 때 설악산의 암석은 화강암과 편마암 그리고 고생대와 신생대에 만들어진 암석들이 혼재해 있다. 특히 귀때기청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능선부는 고생대에 생성되었다. 그러니까 나이를 많이 먹었고 그만큼 암질이 약하다는 것이다. 설악산 서북능선을 가보면 알겠지만 절리현상으로 쪼개진 암석들이 널브러져 있다. 거대한 너널지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단단했던 암석이 세월이 흘러 약해지고 비바람에 쪼개지고 무너진 결과이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몇 년 전 거대한 폭우가 닥쳤을 때 설악산 능선부에 있던 암석들이 그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계곡으로 쏟아져 내렸었다. 지금도 격렬했던 그 상흔이 긴 손톱에 깊게 할퀸 모양새로 골짜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설악산은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무너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장군바위골, 상투바위골, 석고동골 등 깊은 계곡에는 능선에서 무너져 내린 집채 만 한 바위들로 아수라장이다. 구글 지도를 보면 그 생체기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대자연의 시각으로 볼 때는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자연의 순환 현상인지 모르지만, 한편으론 날이 어두워지면 신음소리 토해내며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대자연의 등쌀에 시달리는 설악산이 이제는 인간의 등쌀에 치도곤을 치를 태세다. 인간의 등쌀은 더욱 가혹하다. 암석의 절리와 풍화작용은 곤충이 변태하는 고통의 과정과 같지만, 인간의 등쌀은 생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동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토목기술은 세계적 수준임을 자타가 인정한다. 그까짓 삭도공사 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한반도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는 송전 철탑과 케이블선을 볼 때 4km 남짓한 삭도공사는 별거 아닐 수도 있다. 조금의 암석을 파헤치고, 적은 숫자의 나무들을 좀 뽑아내고, 몇 마리의 산양 정도는 무시할 수도 있고, 토목공사야 인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장비가 하는 것이니 예전처럼 사람들이 죽어 나가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몇 년 동안 고생하면 케이블카는 순조롭게 완공될 것이다. 민원도 없으니 공사 조건은 최적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 환경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케이블카 추진론자들은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가는 등산로의 훼손에 비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케이블카를 설치 할 때의 파손의 정도가 훨씬 더 양호하다고 주장한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은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이 설악산을 더욱 건강하게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일갈한다. 그렇다면 케이블카를 더 많이 즉, 설악동에서 마등령, 백담사에서 소청, 장수대에서 안산 등에도 설치하여 설악산의 환경을 더욱 보호함이 옳을 것이다. 알프스 융프라우에는 케이블카 선이 50개가 넘는다고 하니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물불가리지 않고 설치함이 타당할 게다.
또한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낙후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일환이라고. 이 사업을 능가하는 사업은 생각할 수 없다고. 오직 케이블카만이 양양의 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케이블카 하나 설치한다고 양양군의 삶의 질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케이블카 하나 설치한다고 해서 그 지역 경제지수가 생각만큼 상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덕유산을 예로 들면 그곳에 곤돌라 시설이 없었다면 -스키장을 운영하는 겨울철을 제외하고- 덕유산을 찾는 사람은 현재보다 10%도 안 될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주군이 타 지역보다 더 잘 산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경제적 체적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서울 경기지역에서 볼 때 덕유산은 접근성이 안 좋아 1박 정도는 해야 하지만 설악산 오색은 서울에서 2시간이면 갈 수 있고 당연히 굳이 숙박이 필요하지 않다. 겨우 케이블카 운영에서 얻는 이득 정도만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공익성을 담보로 한다면 수익성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지만 말이다.
양양군이 진정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원한다면 위에서 말한 대로 하나가 아니라 보다 많은 수를 설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하나 가지고는 기대에 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융프라우를 꿈꾼다면 최소한 10개 정도는 만들어야 양양군의 삶의 질이 조금은 좋아질 것으로 사료된다.
금년 9월 초에 가본 대청봉엔 정상 인증 사진 하나 찍으려면 대단한 인내력이 필요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개미떼처럼 바글바글했다. 모두 다 오색과 한계령과 백담사와 설악동에서 출발한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는 산을 찾는 사람들과 관광을 목적으로 오른 사람들이 혼재해 있었다.
꿈에 그리던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면 덕유산에서 볼 수 있듯이 중청과 대청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붐빌 것이다. 끝청에서 중청대피소를 거쳐 대청봉에 오르는 등산로는 넓은 관광로로 바뀌어야 할 것이고, 현재의 중청대피소는 많은 관광객을 소화할 수 없으니 대규모 식당가와 휴게시설 등을 새로 지어야 할 것이다.
또한 중청대피소에서 설악산에 오르는 너덜지대는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 평평하게 닦아야 할 것이고 온갖 관광 시설들이 만들어져야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동해바다가 보이는 대청봉은 현재의 바위덩어리들을 걷어내고 몇 백 평 정도 되는 데크를 깔아 까다로운 관광객의 안위와 안락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하여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은 관광객이 점령하고 등산객은 사라질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심지어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에도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지 않았다. 설악동에 겨우 1km 정도 밖에 안 되는 권금성 케이블카를 설치했을 뿐이었다. 그 당시 더 높은 봉우리로 향하는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없는 어떠한 걸림돌도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현재의 오색~끝청 케이블카 정도는 문제가 되지 못했다. 생각만 있다면 무슨 명분을 가지고도 추진했을 것이다. 기술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스위스 삭도회사에 도급을 주면 기술적 한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산은 오르기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 진부한 아포리즘이지만, 힐러리경이 말했듯이 산은 거기 있으니까 가는 것이다. 어떤 복잡한 철학적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심오한 의미가 있지도 않다. 산이 저기 존재하고 그 산이 좋으면 그냥 가는 것이다. 먼 옛날에도 그랬듯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찾고 산을 오를 뿐이다. 회귀본능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인간에겐 산에 가고 푼 유전인자가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 본능은 용불용설에 적용 받지 않고 현재도 우리 내면에 살아 있다.
산에 오르는 것은 힘들다. 체력과 멘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높은 산에 오를 수 없다. 산은 자연이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의 힘으로 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힘들게 오른 산객에게 봉우리는 달콤한 위안을 준다. 그 동물적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저 아~ 좋다! 라고 외칠 뿐이다. 거친 숨과 한발 한발 땅을 다지며 봉우리에 오르면 산은 산객에게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은 바람과 풍광을 선사한다. 그만이 그 자연을 즐길 자격과 권리가 있는 것이다.
빛처럼 빠르고 각박한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온 우리는 산에서 느림을 행한다. 그 느림을 이해하지 못하면 산에 갈 수 없다. 산에서는 빨리 갈 수 없기 때문에 느림은 숙명이 된다. 불과 1미터도 안 되는 보폭으로 저 높은 봉우리를 향해 몇 시간 혹은 하루종일 걷는다는 것은 저 아래 대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노역이다. 느림을 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쌀 서발을 주어도 산에 오르지 못한다. 산에서 느림을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 느림의 경험은 삶의 활력소가 아니라 내면에 감춰져 있는 내재적 자연을 일깨워 주는 것이리라. 산도 자연이고 우리도 자연이기 때문이다.
케이블카 개발을 보고 평소에 산을 찾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거품을 문다.
"산의 풍광은 불특정다수도 볼 권리가 있다. 체력이 좋아 맨날 산에 오르는 사람만 정상의 아름다움을 즐길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은 저질 체력자들과 산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국민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권리가 있지 않은가. 천부인권이다. 산은 모두에게 공평하여야 한다. 하여 케이블카 설치를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현재도 전국 방방곡곡에 케이블카와 곤돌라 시설은 즐비하다. 이미 설악산 권금성과 내장산, 가야산, 두륜산 등에 관광용 곤돌라가 운행되고 있다. 만약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완성된다면 대한민국의 모른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노라고 지자체에서 들고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풍광이 좋다는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세워졌으니 그것을 기폭제로 케이블카 러시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름깨나 있다는 유명한 산 곳곳에는 거미줄처럼 와이어가 걸릴 것이고 수많은 관광객을 실어 나를 것이다. 지리산 북한산은 물론이고 오대산, 태백산, 월악산, 소백산, 월출산 등에도 예외일 수는 없다. 산은 수많은 관광객에 노출되고, 숨을 쉬지 못하며 질식할 것이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이미 오래전부터 지구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있으며 자정능력도 사라지고 있다. 그런 현상은 팩트이며 과학적 진실이 된지 오래되었다. 자연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저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구구절절 나열하지 않아도 인간은 자신들이 저지른 탐욕의 대가를 지금도 톡톡히 치루고 있지 않은가. 돈 몇 푼에 설악산을 파는 행위를 저 대자연은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케이블카 따위를 설치하는 행위는 자연과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물로 간주하겠다는 오만방자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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