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주를 한 번 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지만 또다시 핵발전의 확장으로 없어질 마을
신리마을과, 나 같은 서울시민의 편리한 전기를 위해 복무하고 있는 파병군 신고리3?4호기의 실물을 기억하겠다
청년초록네트워크
근처 해변에 가서 핵발전소와 마주했다. 예상한 것처럼 압도적이진 않았다. 만화 심슨 가족에 나오는 연기를 뿜는 거대한 괴물을 상상했던 나에게는 그랬다. 그 뒤에 송전탑이 송송이 뒤따르고 있는 것만 제외하면 평범한 전기 공장이라고 해도 넘어갈 것 같았다. (실제로 고리발전소가 처음 지어질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그저 '전기 공장'쯤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곳이 문제적으로 느껴졌던 건 사람들 뒤에 천연덕스럽게 서서 한 배경을 이루는 태도와 만지기 힘든 바다에서였다. 우리들은 모래를 밟고 한 줄로 서서 뒤를 돌아봤다. 자연스러움을 요구하는 사진가의 부자연스러움을 지적하며 웃었다. 나는 무리를 벗어나 파도 가장자리로 달려갔다. 늘 하던 것처럼 물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잠깐 들렸다가 떠나갈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만지고 싶지 않았다. 삼중수소가 유출된다는 말을 들은 후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핵발전소는 바다를 뺏어가는 친근한 유괴범의 모습이었다.
다음 날에는 울산·부산으로 내려가 고리 단지의 원전을 봤는데 웅장한 느낌이 있었다. 에너지정의운동의 활동가 한 분의 안내 해설로 지역 현장을 둘러보았다. 신고리 3·4호기의 큰 돔에는 파란새가 그려져있었다. 곧 없어진다는 신리마을을 돌아, 없어지고 있는 골매마을 쪽에서 한번 더 바라보았다. 바다와, 집이 무너진 철거더미와, 대규모의 송전탑, 또 탑처럼 죽죽 솟아있는 크레인 왼쪽에 발전소 몸체가 있었다. 그걸 바라보고 서있는 지점 또한 신고리 5·6호기가 세워지면 출입이 통제될 거라고 했다. 핵발전소의 실체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사라지고 통제되는 것이다.
신고리 이전에는 월내 방파제에서부터 (구)고리핵발전소 주변을 돌았다. 고리 정문에서 모르고 사진을 찍다가 삭제를 요구받아 이곳이 보안 시설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한쪽 구석에 있는 비석 뒤에 반 원으로 둘러서서 얘기를 나눴다. 무성한 토끼풀이 내 발에 밟히고 있는 게 느껴졌다. 비석의 뒷면에는 발전소에 밀려난 마을에 대한 기억과 작은 기념이 적혀 있었다. "고리는 마을 이름에 불을 안았던 인연으로 오늘 여기 민족 웅비의 힘의 원천 원자력 발전소가 섰네."
그 밖에 우리는 노동당 당사에서 이곳 지역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기장 해수담수화 반대운동을 해오신 분들과 만났다. 해수담수화 운동을 했던 두 분이 나와 그동안의 일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핵발전소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기본적이고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해수담수화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핵발전의 문제에 대해 설명하더니, 이 싸움을 하면서 전적으로 알게 된 것들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운동을 하고 싸움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모두 전문가가 되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을 떠나 서울로 가는 길고 먼 길에 다시 올랐다. 돌아가는 길은 오는 길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어두워질 때까지 책을 읽었고 바깥이 깜깜해지고 나서는 라디오를 들었다. 대선 토론회를 하고 있었다. 후보들의 핵발전 공약에 서울 시민과 경주·울산·부산 주민들, 한국에 사는 모든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걸려있었다. 집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답사를 다녀오며 사회운동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 동료로부터 활동의 동기에는 자족적인 공부의 의미뿐 아니라 사회적인 책임이 담겨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드 반입에 저항하는 성주와 5월을 기억하는 광주··· 가야 '하는' 곳이 늘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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