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골목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이웃사촌이라고 부르면서 가족처럼 친하게 여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옆집 동갑내기 남자아이와 딱지치기를 하거나 동네 언니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며 정신없이 놀던 장소는 주로 '골목길' 이었습니다. '골목길'에는 유년시절의 따뜻함, 아련함, 그리움과 포근함이 오롯하게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추억의 '골목길'에 다소 어두운 이면이 있습니다. '범죄 불안장소 1위'가 바로 '어두운 골목길'이라는 것입니다.
법무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범죄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장소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5.2%가 '어둡고 후미진 골목'을 꼽았습니다. '유흥업소 밀집지역'이 35.6%로 뒤를 이었고, '놀이터나 공원'(29.5%), '지저분한 거리'(25.8%)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저는 주로 혼자 걸어서 통학을 했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는 골목길이 하나 있었는데 반드시 그 길을 통과해야만 제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아침 8시30분정도 되었을까요? 골목길을 중간 정도 걸어가고 있는데, 후미진 모퉁이에서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툭 튀어나왔습니다. 그 당시 40대이던 저희 아버지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고 외할아버지보다는 적어 보였으니 아마 50~60대 정도로 되는 아저씨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성기를 속옷 밖으로 꺼내서는 흔들흔들 대면서 저를 향해 느끼하게 웃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본의 아니게 아저씨의 흔들거리는 '그것'을 한참동안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갑작스럽게 성인 남성의 성기를 그것도 환한 대낮에 정면으로 보게 된 터라 낯설음과 불쾌함 속에서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당시 한 살 먹은 아기였던 막내 남동생의 '그것'과는 다르게 귀엽지도 연약해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생김새가 연못가에 자라는 '부들'같다고도 생각하다가 계속 보고 있기는 참으로 불편하고 싫다는 마음이 확 밀려왔습니다. 다행히 그 아저씨는 본인이 정한 그 자리에서만 그 '부들' 같은 것을 계속해서 열심히 흔들대고 계셨고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학교를 가기 위해선 그 아저씨 앞을 지나쳐 가야만 하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불쾌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고, 발은 안 떨어지고 이래저래 가슴속이 답답해 왔습니다.
"엄마야!! 이 양반이 미쳤나!!"
매우 높고 새된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들려왔습니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의 어떤 아주머니께서 대문을 열고 나오시다가 아저씨를 보자마자 소리를 꽥~지르셨습니다. 이내 저를 발견한 아주머니는 '너는 얼른 학교나 가라'며 저를 향해서도 소리를 빽~ 내시더니 다시 아저씨를 향해 격렬히 욕설을 퍼부으셨습니다.
"이 미친 @#$%&*가~ 어디서 &*()^%$~!!"
뭐랄까요.. 그 생명력 넘치시던 아주머니의 목소리 덕분에 정신이 확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주머니의 카랑카랑한 사자후를 뒤로 하고 마구 마구 뛰어서 학교 정문까지 내달렸습니다. 그 날 이후, 그 골목길에 차마 혼자 걸어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골목길을 통과하지 않으면 길을 멀리 돌아서 가야했지만 다시 그 길로 갔다가 또 징그러운 아저씨와 마주칠 것 만 같았습니다. 3년이 지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그 근처 골목길에서 또 다른 이상한 아저씨와 마주쳤습니다. 이 아저씨도 자기만의 소중한 '그것'을 꺼내서 미소 띤 얼굴로 저를 쳐다보며 흔들대고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불쾌감이 엄습했고 살짝 몸이 굳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3년 전인, 1학년 때와는 달리 저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뒤통수가 화끈거리고 간지러웠지만 나름 용기를 쥐어 짜 내서 그 아저씨 앞을 지나쳐 왔습니다.
겨우 초등학교 4학년 이었지만, 그런 아저씨들을 두어 번 보게 되자 더 이상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분들은 3년 전 뽀글 머리 아줌마처럼 대차게 빽~소리 한 번 질러주거나 아예 아무런 반응을 하지 말고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마주친 아저씨들의 행위는, 공연(公然)히 음란한 행위를 하는 죄, 즉 형법상 '공연음란죄'에 해당하고 당장 현행범인으로 체포를 해야 하는 범죄행위입니다(공연음란죄 : 형법 제 245조 1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
'공연음란죄'는 건전한 성도덕 내지 성풍속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공연히'란 불특정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일컫고 '음란한 행위'는 성욕의 흥분 또는 만족을 목적하는 행위로서 사람에게 수치감·혐오감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음란성의 판단에는 행위가 행하여지는 주위환경이나 사건이 일어나는 생활권의 풍속·습관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합니다.
초등학생때 두 번이나 '공연음란죄'의 피해자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행위 자체가 '범죄'라는 인식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머리가 이상한 아저씨들이라 병원에 가야된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흔한 피해자 중의 하나였던 제가 경찰이 되고나서는 가해자를 체포하는 입장으로 상황이 역전되는 경험을 하게 되니 범인들을 체포할 때마다 통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혼자 체포한 것은 아니고 항상 남자 경찰들과 함께 인데다 보조적인 역할에 그쳤지만,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최선을 다했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순찰요원으로 112신고 사건을 담당할 때는 동료들과 함께 직접 체포에 나서는 상황이 많았지만, 형사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현행범인으로 체포되어 온 가해자와 마주 앉아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하는 일을 주로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봄 밤, 순찰요원들께서 한 30대 남성을 '공연음란죄'로 체포해 왔습니다. 광화문 사거리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여고생들 앞에 '짠~' 하고 나타나 옷을 하나씩 벗으며 아무도 원하지 않은 스트립쇼를 벌인 남자였습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112에 신고를 했고, 피해 여고생들은 '아저씨한테 가라고 말했는데도 안 가고 계속 옷을 벗고 성기를 꺼내서 자위를 했다,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는 내용을 진술서에 꼼꼼히 적어 왔습니다.
가해자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나름 심도 깊은 대화를 시도하여 보았으나 그 남자는 저를 쳐다보며 방긋 방긋 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역시나 여느 공연음란죄 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말 수가 적었습니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함에 있어서는 적극적이었지만 말입니다. 시종일관 묵묵부답이라 범죄 사실에 대한 '자백 진술'을 이끌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진술, 목격자들의 진술 그리고 촬영된 영상이 있었기 때문에 '기소' 의견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기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여성을 놀래키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남성다움'을 인정받고자 하거나 자신의 소중한 '그것'을 보고 놀라는 여성을 보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행위는 정신질환의 일종입니다. 실제로 극심한 우울증이나 여성으로부터 큰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주 발견되기도 합니다. 흔히 '바바리맨'으로 대표되는 노출증은 자신의 성기가 잘릴지도 모른다는 '거세공포증'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성기를 사람들에게 과시하려는 욕구, 성기를 드러냈을 때 당황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쾌감을 느끼려는 행위는 '거세공포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이라는 것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직접 만지거나 물리력을 행사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다지 중한 범죄로 여겨지지 않는 경향이 있고 개그 프로에서 가볍게 희화화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는 오랫동안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트라우마를 일으키기도 하는 엄연한 '범죄 행위' 입니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상황은 우리 삶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우연입니다. 지금까지 유지해온 삶의 모양과 다르게 놓여진 생소한 사건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크고 작은 다양한 삶의 위기에 잘 대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용기' 입니다. 우리 안에 '용기'가 살아 있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게 하고, 견디게 하고, 또 자신을 지키게 하는 정신력으로 나타납니다. 처음 가해자와 골목길에서 1대1로 마주 섰을때 아무 소리도 못 내고 가만히 있기만 했던 제가 3년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긴장하고 있던 두 다리를 움직여서 자리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 속에서 '용기'라는 감정이 튀어나왔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용기'라는 단어는 왠지 남성스러운 단어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단어 그 자체에는 성별이 따로 없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용기'가 없으면 아무리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나도 소용이 없습니다. 악당들 앞에서 눈도 똑 바로 못 마주치고 머리 싸매고 웅크리고 앉은 연약한 슈퍼히어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슈퍼히어로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그러한 능력을 끄집어 낼 마음가짐, '용기'가 없으면 다 무용지물입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겁쟁이 사자가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 것도 '담대한 용기'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살아가다보면 위험이 없을 수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닥쳐올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위험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능력, 그 위험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능력, 이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자~ 여러분은 '용기' 있는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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