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고둥, 지충 곁에서는 바다고등들이 자신들도 있다고 바들바들 떨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군요.
김학현
바람이 스르르 불었습니다. 나뭇가지 위로 오롯이 눈꽃이 앉았습니다. 파도가 드나들며 작은 흔적들로 모래 위에 상형문자를 그렸습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내가 걷는 두에기해변은 여전히 거기 호젓하게 앉아 있습니다. 오롱조롱 지충이며 바다고둥을 바위에 가득 이고 말입니다.
'지충'을 아세요? 저는 안면도에 와서 처음으로 지충이란 걸 보았습니다. 보기만 한 게 아니고 먹기까지 했습니다. 맨 처음 지충을 본 건 교회 점심식사 때 밥상 위에서였습니다. 그때 두 가지 해초가 나란히 다른 반찬들과 함께 나왔습니다. 물론 나는 그때까지 그 두 물건(?)의 이름조차 몰랐습니다.
옆의 성도에게 물었죠. 아주 용감하게. 젓가락으로 한 물건을 가리키며 "이건 뭐하는 물건이에요?"라고.
"모르세요? 이건 꼬시래기라는 해초인데유." 그렇게 시작된 나의 탐색은 기어이 '지충'이란 물건으로 젓가락을 향하게 했답니다.
"그건, 지충이지유. 건강에 좋아유. 안면도에는 많이 있어유."그때 이후 지금도 여전히 가끔씩 교회 식사 때면 두 물건이 밥상에 올라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쩌다 식당에서 꼬시래기 무침은 본 듯도 합니다. 하지만 지충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먹어 봤답니다. 맛이요? '맛좋다!'는 아닙니다. 다른 이들에겐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겐 그렇습니다. 한 번 식사에 한 번 정도 젓가락이 갈까 말까 합니다. 다른 해초들에 비해 입맛이 까칠하거든요.
그런데 그 일생일대에 처음 보았던 지충이란 해초가 두에기해변에 지천이군요. 이미 말씀드렸죠? 두에기해변은 모레, 바위, 몽돌 모두가 어우러져 있다고요. 네, 그 바위들이 난무한 지역에 지충이 지천이랍니다. 날카로운 바위 날에 벨까 걱정이 드는 건 나의 기우인가 봅니다. 지충은 그런 날카로움 따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온 바위를 뒤덮고 있습니다.
지충은 새끼를 꼬다 만 듯 뭉뚝하고 작은 줄기를 자랑합니다. 언뜻 보면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뭉뚝한 게 줄기이고 그 줄기에는 작은 입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하여튼 먹음직스런 모습은 아닙니다. 어째 안면도 사람들은 이런 걸 먹을 생각을 했을까요. 웬만하면 전리품으로 몇 줄기 따올 만도 하지만 그리 내키지 않았습니다.
내게 지충은 안 맞는 듯합니다. 건강에 좋다는 한 성도의 설명이 자꾸 뇌리를 스치는군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내게 맛을 안겨주지 못하는데. 허. 아무리 건강에 좋아도 맛이 따라주지 않으면 '노 땡큐!'입니다. 좀 까다롭죠? 지충 곁에서는 바다고둥들이 자신들도 있다고 바들바들 떨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군요.
천만년의 역사가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