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행복만을 바라는 엄마가 너의 행복을 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페미니즘이란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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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참 예민하고 까칠한 여자다. 사회가 요구하는 고분고분한 여성상과 거리가 멀어. 선배들이나 교수님들에게 할 말을 꼬박꼬박 한다며 손가락질 받기도 했고, 결혼한 후에는 아빠와 참 많이 싸웠어. '김여사', '마누라'와 같은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옆 집 부끄럽게 대판 싸우고는 결국 아빠의 사과를 받았지.
그런데 살면서 기분 나쁜 일들에 대해 지적하고, 말할수록 이해받는 것이 아니라, 이해 못할 '유별난 여자'가 되더라. 아빠와 싸운 일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반응은 뭐 그런 걸로 시비를 거냐고 핀잔을 주거나, 엄마 같은 여자랑 사는 아빠가 딱하다고 불쌍히 여기는 거야.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 너무 짜증나고 슬퍼서 성난 목소리를 내면 별 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낸다며 이상한 사람 취급했어.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 받을수록 엄마의 자존감은 참 많이 낮아졌다. '난 왜 이렇게 화나는 일이 많을까.' 엄마의 예민한 성격이 문제라고 스스로를 탓했어. 아빠도, 엄마의 엄마도, 엄마의 언니들도, 엄마의 친구들도... 엄마편이 아니었기에 삶이 참 외로웠다.
'그래, 성격 죽이고 살자! 순한 양이 되자. 부드러운 사람이 되자!' 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만난 이후, 엄마의 분노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단다. 내 성격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개인적인 열등감을 떨쳐낼 수 있었어. 엄마의 감정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고, 응원해주어 더 이상 외롭지도 않았다. 당연한 걸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거야. 페미니즘 덕분에 한없이 추락하던 자존감을 다시 찾을 수 있었지.
'내가 느낀 불편한 감정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구나. 계속 말하리라' 더 이상 엄마는 사회에서 가정에서 기대하는 여성의 상, 엄마의 상, 며느리의 상에 맞추느라 눈치 보지 않는다. 엄마가 느끼는 부당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거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바뀐 거야. 타인이 원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기보다, 엄마가 원하는 사회를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어.
특히, 정색하거나, 소리 지르거나 말다툼하던 수준을 벗어나 좀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아주 큰 소득이라고 생각해. 내공이 부족해서 아직도 미친듯이 분노하거나 눈물을 쏟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계속 공부해 나간다면 온갖 치사하고 짜증스러운 일들에 대해 웃으면서 설명할 수 있는 날도 오겠지.
아리야, 다양성을 존중하며 세상을 더 평등하게 한다는 페미니즘의 거창한 뜻에 따르지 않아도 괜찮아. 이기적으로 너 자신만을 위해 페미니스트가 되어도 좋다. 엄마는 목적이나 속도가 다를지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분노를 알아봐주고, 위로가 되어주고, 함께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말야.
엄마는 요즘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엄마의 분노를 설명하고, 엄마의 주도적인 삶을 찾기 위해 시작한 공부인데, 페미니즘이 엄마를 점점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껴.
엄마 삶을 엄마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나아가 약자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게 하고, 편견을 깨는 열린 사고를 훈련토록하고. 무엇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실천을 고민하게 하니까 말야. '이 좋은 것을 모든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배워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기까지 해.
너의 행복만을 바라는 엄마가 너의 행복을 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페미니즘이란다. 페미니즘은 너의 소중한 인생을 더 풍요롭고 가치있게 해줄 거야. 엄마를 믿어주렴.
한 사람의 백 발자국 보다 백 사람의 한 발자국에 훨씬 더 큰 힘이 있다지. 부족한 엄마지만 엄마와 함께 하나씩 배우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보자. 작은 걸음으로도 세상은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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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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