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산들이비밀을 쫓는 자
정가람
사건은 오후 땅거미가 질 무렵에 벌어졌다. 평소처럼 거실의 커튼을 치던 둘째가 창문 너머 놓여 있는 택배박스를 발견한 것이다.
"어? 아빠 바깥에 무슨 택배 박스가 있는데?""(아... 이걸 어쩌지?) 그래? 뭐지?""익사이팅? 내가 산타할아버지한테 부탁했던 그 선물 같은데? 나가서 확인해 봐야지."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7살이 되어 아이가 글을 읽게 된 것이 지금처럼 원망스러운 적이 있었던가. 어째야 하지? 이렇게 진실이 밝혀지는 것인가? 옆에서 5살 복댕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져 있는데?
그때 나를 구원한 것은 안방에 있던 아내의 날카로운 잔소리였다. 아내는 서둘러 현관으로 나가는 둘째를 불러 세웠다. 이 시간쯤 되면 빨리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왜 아직도 말 안 듣고 그러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주 자연스러운 잔소리였다.
둘째가 멈칫하고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는 사이, 난 서둘러 나가서 택배박스를 개봉하고 장난감을 멀찌감치 숨긴 채 택배 상자만 들고 들어왔다. 둘째의 날카로운 눈빛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었다.
"어? 택배 박스가 비었네? 아빠, 그 안에 장난감 없었어?""응? 없었는데. 이거 그냥 박스 쓰레기야.""이상한데. 산타할아버지가 박스 쓰레기만 보냈나? 박스만 던지시고 다른 곳으로 갔나?""글쎄. 모르겠네."도저히 마땅한 답변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 정도 됐으면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산들이는 그 비밀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넘어갔고 다음 날 동생과 함께 산타할아버지에게 꼭 제대로 오시라고 기도를 했다. 내가 속이는 건지, 속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자기네 어린이집에는 산타할아버지 대신 아빠가 3일 전에 선물을 사 준 친구도 있었다고 했으니 이미 비밀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겠지.
그래도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