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직장의 신' 회식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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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어김없이 회식이 찾아온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회식이기에 더욱 거창하고 성대해진다. 1차로 맛있는 식사를 다 같이 하고(물론 술을 곁들여서), 2차로 노래방을 간다. 식사를 할 때만 해도 점잖았던 동료들이 술이 들어가자 조금씩 거칠어진다. 억지로 술을 권하고,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 수 없는 러브샷을 시키고,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한다.
노래방으로 장소를 옮기면 그 강도가 훨씬 강해진다. 나이 어린 순으로 노래를 시키고, 노래방 밖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험악한 얼굴로 빨리 들어오라고 한다. 결국 술 취한 몇 명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억지로 노래방에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가 순서가 돌아오면 좋아하지도 않는 트로트를 부른다. 그리고 우리 회사는 화합이 참 잘 된다며 이렇게 분위기 좋은 곳은 아마 없을 거라며 자화자찬하고 마무리된다.
항상 똑같이 열외 없는 술, 노래방 코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회식인가. 막상 즐거워하는 사람은 술 좋아하는 몇몇뿐. 회식 시간이 빨리 지나고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 얼굴이 수두룩하다.
화합의 정도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술을 많이 마시고, 망가지고, 서로에게 얼마나 많이 실수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화합의 정도가 일정 수준 이상 되면 회식은 목적을 모두 다 달성한 것이 된다. 가끔 도를 넘는 사람들이 있어 싸움, 성희롱, 막말 등이 오가기도 하지만 그런 것쯤은 사소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술은 반드시 마셔야 하며, 농담을 가장한 어떤 희롱도 허용되는 분위기, 무엇이든 모두가 다 함께 해야 하는 문화, 재롱은 나이어린 순으로 떨어야 하며, 이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이고 적극 참여하면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 되고, 여기에 소극적이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사회성 없고 분위기 망치는 사람이 된다.
이런 우리의 회식에는 한국의 문화가 모두 잘 어우러져 있다. 술 마시고 한 실수는 허용해 주는 술에 관대한 문화, 나이로 위계를 세우는 나이주의, 뭐든 같이, 열외는 인정하지 않는 군대문화, 개인의 취향은 가볍게 무시되는 전체주의 문화. 이 문화들 과연 좋은가. 우리가 계속 지켜갈 만한 아름다운 한국의 전통 문화인가.
언제까지 이런 회식을 참고 견뎌야 하는가. 화합을 위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몇몇만 기분 좋고 대부분은 괴로운 이것을 왜 계속해야 하는가. 민주주의 촛불혁명도 이뤄낸 우리가 왜 회식 때만 되면 스스로 군부독재 시절로 걸어 들어가서 군인이 되어 열외 없는 군대문화 체험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