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이 선명하고 당도가 높은 터키의 과일들.
류태규 제공
수난은 사람들을 힘겹게 했지만...
오래 지속된 수난과 핍박 탓일까? 터키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의 속내를 다른 이들에게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살아가는 곳이 '영원하다'고 믿지 않는다. 축적된 역사가 준 상처 탓이다.
카파도키아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도시 괴레메. 그곳에서 만난 삼촌과 조카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모종의 열망에 들떠있음을 숨기지 못했던 선량한 그들.
어떤 것은 '우주선'을, 또 다른 어떤 것은 '버섯'을 닮은 괴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규칙과 순서 없이 제멋대로 솟아오른 풍경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조그만 마을 괴레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점심을 먹고 나면 동네 산책하듯 야트막한 언덕을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터키 맥주 에페스(Efes) 몇 병과 간단한 안주를 사 들고 다니던 소풍.
그러던 어느 날 오후. 괴레메에서 2km쯤 떨어진 야트막한 언덕 나무 그늘에서 안주 없이 맥주를 마시던 터키의 중년 사내 한 명과 청년 하나를 만났다.
나이가 많은 사내는 괴레메 인근 마을에서 목수로 일한다고 했고, 22살 청년은 카이세리(Kayseri)라는 도시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했다. 아시아 문화를 공부한다고 했던가…. 둘은 숙부와 조카 사이였다.
수인사를 나누고 서로가 가져온 맥주로 목을 축였다. 나는 터키어를 하지 못하고, 둘은 영어가 서툴렀다. 간단한 단어 정도만으로 의사를 나누며 그저 마주 보고 웃었을 뿐. 그러던 시간이 잠시 흐른 뒤 터키 청년이 앞뒤를 자르며 대뜸 물었다.
"우리 마을이 좋으세요?" 예의상 아래와 같이 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경치가 멋지고 사람들도 착해서 마음에 드는데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서글펐다.
"그럼, 여기서 사세요. 대신 아저씨 여권은 나를 주세요. 내가 한국 가서 살게요." "그럴까요?"라고 웃으며 대답해놓고 보니 괜스레 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