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대한 이민자의 고민, 쿨하게 해결하다

한국이름과 영어이름 사이

등록 2018.01.09 10:09수정 2018.01.0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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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그렇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여긴 캐나다이니 영어 이름을 가지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 그렇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여긴 캐나다이니 영어 이름을 가지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unsplash

이름은 자기 것인데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남이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이름보다는 남이 부르기 쉬운 이름이 좋은 이름으로 치부된다. 우리와 다른 언어를 쓰는 캐나다에 와서 이름을 한국식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여기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민자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같다.


나는 처음엔 영어 이름을 가지는 것에 대해 좀 회의적이었다. '50년 가까이 쓰던 이름이 있는데 그걸 버리고 굳이…무슨 영화를 보겠다고…'라는 생각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여긴 캐나다이니 영어 이름을 가지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니 자신의 이름 첫 알파벳과 같은 영어 이름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일반적인 듯 보였다. 예를 들면 한국 이름이 대* 이면 David, 진*이면 John 또는 James, 병* 이면 Brian, 철* 이면 Charles. 이런 식이다.

물론 자신의 한국 이름과 전혀 상관없는 이름을 가진 경우도 있으니 이것을 무슨 일관된 법칙으로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위에 예를 든 이름이 한인 남자들이 가진 영어 이름 중 상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 이 이름들이 부르기 좋은 이름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내 원래 이름 첫 알파벳을 살려서 Tim 이라고 지었다. 게다가, 내 한국 이름 영어 철자(Tae Wan Kim)를 나열해 놓고 그 중에 중간부분을 삭제하고 앞뒤 세 글자만 따면 Tim이 되니 내 원래 이름에서 그대로 따온 거라는 나름의 명분도 있었다.

이런 내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지금은 미국 회사 버거킹에 합병당했지만 그래도 수많은 캐나다인들에게 여전히 국적 커피 브랜드로 사랑을 받고 있는 팀 홀튼스(Tim Hortons)에 내 이름이 들어 있으니 나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디에 전화를 하거나 처음 이름을 소개할 때 잘 못 알아들으면 이 브랜드를 대는 것으로 이름을 쉽게 알릴 수 있으니 유명 브랜드에 무임승차하는 커다란 혜택을 맛봤다.


"왜 진짜 이름 두고 영어 이름을 쓰니?"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내 영어 이름은 처음으로 등록한 캐나다 교육기관에서부터 3~4개월간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교육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 과정을 진행하던  동유럽 출신의 강사가 나의 진짜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그리곤 왜 진짜 이름 두고 영어 이름을 쓰느냐고 했다.


"부르기 좋고, 기억하기 좋고…" 

나의 판에 박은 대답에 그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한국 이름도 발음이 그리 어렵지 않고 오히려 기억이 잘 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여기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굳이 영어식 이름을 별도로 갖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그날 내내 뭔가 영혼없는 행동을 한 것 같이 마음이 불편했다. 영어 이름 짓는 걸 탐탁지 않아 했던 처음 생각이 옳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함께 했다.

이런 나의 내적 갈등도 잠시, 그 후 이어진 몇 번의 캐네디언 회사 근무와 볼런티어 활동을 통해 나는 Tim으로 굳건히 자리매김되어 갔다. 한인들과의 만남에서는 원래 내 이름, 캐네디언들에게는 Tim. 이런 명료한 공식을 정착시켜가던 나에게 전기가 왔다.

풀타임 일을 찾던 나는 토론토의 한인 언론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나의 이름 사용에 관한 공식은 여기에서 여지없이 허물어 졌다. 한국인이 사주이고 직원들이 100% 한국인인 이곳은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호칭하고 있었다. 마치 처음에 영어 이름을 지으려 할 때 그랬던 것처럼 마뜩찮은 마음이 들었다.

캐네디언들이 'Tim' 이라고 부를 때는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던 것이 한인들이 부르는 영어 이름은 왜 이렇게 불편하게 들리는 걸까?' 양복에 고무신이랄까 뭔가 조화롭지 못한 불협화음처럼 들렸다. 이런 불편함은 나보다 연배가 낮은 사람들이 부를 때 조금 더 심했다.

관계와 호칭에 대해 특별히 까다로운 문화 속에서 살아온 중년 한국 남자의 쿨하지 못한 인식의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듯하여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그냥 쉽게 생각해서 한국도 캐나다도 아닌 한국계 이민자 사회의 한 단면이려니 여기고, 내 인식을 먼저 바꾸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아 이런 방법이 있었지!

그러던 어느날 나보다 이민 생활을 오래한 분들이 자신의 이름을 쓸 때 영어 이름을 제일 앞에 쓰고 중간에 자신의 한국 이름 그리고 마지막에 성을 쓰는 것을 보고, '아! 이런 방법이 있었지'하고 무릎을 쳤다.

원래 자신의 이름을 미들네임처럼 표기하면 캐나다 사람은 영어 이름으로 한국 사람은 한국 이름으로 골라 쓸 수 있게 하는 묘수가 아닌가?  마치 우리 선조들이 윗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으려 한글자 한글자 파자(破字)하여 읽거나, 원래 이름 외에 호나 자를 지어서 누구든 두루 부를 수 있도록 했던 것과 같은 지혜가 이곳 영어 문화권에서 되살아 나는 것이 아닌가? 

그후 나는 내 이름 표기를 Tim Taewan Kim으로 하게 되었고, 한국인이든 누구든 나이가 많든 적든 내 영어 이름 부르는 것에 익숙해지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Tim은 누구나 부르라고 만든 내 호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옛 이메일 주소를 찾아서 그간 소원했던 동유럽 출신의 강사에게 안부인사를 해야 겠다. 그리고 이말을 꼭 전하고 싶다.

"이름에 대해 해준 충고 덕에 내가 아주 쿨한(?) 코리언 캐네디언이 되어가고 있어 고맙고, 영어식 이름이 아닌 네 이름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아직도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고.
#캐나다 #이민 #영어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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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김태완입니다. 이곳에 이민와서 산지 11년이 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이민자로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그때그때 메모하고 기록으로 남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민자는 새로운 나라에서뿐만이 아니라 자기 모국에서도 이민자입니다. 그래서 풀어놓고 싶은 얘기가 누구보다 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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