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MP그룹 회장이 검찰에 소환된 지난해 7월 3일 오전 미스터피자가맹점주협의회가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방안 등을 논의 중인 서울 서초구 미스터피자 본사 모습.
연합뉴스
프랜차이즈 사업의 특성상 본사와 가맹점주간 '힘의 균형'은 태생적인 한계가 분명하다. 본사 쪽에 일방적으로 쏠린 힘의 균형을 기업이 스스로 맞춰 주길 바라는 건 허황된 바람이다. 어느 미국 드라마에 등장한 적 있는 '전갈과 거북이'의 우화가 이를 대신 설명해줄 수 있다.
이 우화에서 거북이 등 위에 올라타고 강을 건너던 전갈은 자신의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강 한복판에서 거북이를 독침으로 찔러 죽인다. 여기서 전갈을 본사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힘을 가진 기업은 법과 제도로서 어느 정도 통제할 필요가 있다. 이번 판결은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기업에게 '면죄부'를 준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카푸친 원숭이' 실험으로 유명한 '도덕성(공정성)에 대한 동물실험'에서도 확인되었듯 영장류인 원숭이는 물론 개조차 불공정한 보상에 화를 내거나 적대적인 행위를 보인다고 한다. 하물며 지성을 가진 인간인 가맹점주는 어떨까. 가맹점주들은 엄동설한에 손발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배달하고 주방에서 하루 12~13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하며, 심지어 가족까지 희생시켜 돈을 번다.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데, 정우현 회장은 동생의 업체를 치즈 유통과정에 끼워 넣어 이익을 얻게 한 불공정 행위를 벌였다. 또 '치즈 통행세' 논란이나 보복 출점 의혹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일부는 무죄를 받았고, 유죄 판단을 받은 부분에서도 '집행유예'로 책임진다. 이처럼 가맹점주들에게 희생만 감수하라는 판결이 나온다면, 가맹점주들을 개나 원숭이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는 것 아닌가. 우리의 분노와 적개심은 무시되는 것인가.
이번 재판을 지켜보고 판결까지 보면서 필자는 문득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가 떠올랐다. 고졸 출신의, 정말 아무 배경도 학벌도 없는 '가정주부' 여주인공이 미스터피자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규모의 대기업 'PG&E'를 대상으로 소송을 벌인다. 중금속 크롬 유출의 피해자인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 미국 사상 최대 규모의 배상금을 받아낸 실화다.
내가 여기서 주목한 것은 유명한 법무법인도 아닌 일개 평범한 시민이 주도한 소송에 대한 미국 사법부의 태도다. 그들은 '경제'가 아닌 '사람'에게 주목하고 그 합당한 판결을 내렸다. 보복 출점과 치즈 납품 업체에 압력을 가하는 등 전 가맹점주를 힘들게 한 행위를 지극히 자유로운 '경쟁 활동'의 과정으로 판단하며, '사람'보다 '경제'를 더 우선의 가치로 선택한 우리 사법부와는 너무도 대비된 결과였다.
결국 한동안 '갑질'이란 단어로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의 1심 판결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그 어떤 가치보다 '경제'가 우선시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정'과 '공평'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도덕'이라는 가치가 너무도 쉽게 무시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것이다.
특히 판결문에서 "기울어 가는 토종 피자기업을 살릴 마지막 기회를 빼앗는다면 피고인과 가맹점주에게 가혹한 피해를 초래한다"라는 대목은 '도덕과 정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하는 사법부, 더 나아가 이 사회 전체가 '경제'라는 가치에 얼마나 경도되어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외국은 물론 우리나라 법원 앞에도 설치되어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 동상, 한 손에는 칼을 또 다른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으며 때로는 천으로 눈을 가린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디케'의 눈 가리개는 외부의 영향과 편견을 가린 공평함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눈 가리개에 대한 다른 해석도 있다. 1494년 알브레히트 뒤러의 '정의의 여신'이라는 목판화에선 광대가 여신의 눈을 뒤에서 천으로 가리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당시 사법 기관을 어지럽힌 브로커를 풍자했단다.
최근 라디오에서 들었던 어느 지식인의 인상 깊은 촌철살인이 있다.
"과거에는 권력이 '총칼'을 휘둘렀다면 지금은 '법봉'을 휘두른다."
지금 그 법봉이 자본에 의해 눈이 가려진 채 휘둘러진다면 어떨까. 이 사회에서 가맹점주들과 같은 상대적 약자들은 물론, 부의 척도에 의해 사회 진출 전부터 공정한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현재의 젊은이들은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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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가맹점주보다 '갑질 회장'이 더 안타깝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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