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이주영
저자는 소위 '남자답다', '여자답다'라고 인정받는 과정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남성들은 사회적 기준에 꼭 들어맞는 외모가 아니더라도 학력이나 계층 등의 요소가 뛰어나면 '그래도 공부를 잘하니까', '직업이 좋으니까'라는 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여성은) 이상적인 외모를 갖고 있지 못하면 아무리 다른 사회적 자원을 가지고 있어도 남자들의 시선에 의해서 '여자'로 감지되지 못하며 오히려 다른 자원의 가치까지 폄하되는 경우가 많다. (중략) 못생긴 여자가 공부를 잘하면 독한 여자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농담 등은 여성이 가진 다른 자원의 가치를 '외모 수준'에 따라 평가하는 사회적 시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나만 해도 그랬다. 집에서는 아이 양육에 무심하지 않은 엄마로,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을 잘 해내려는 월급노동자로 어느 때보다 분주한 일상을 살아내는 중이다. 서툴게라도 일과 육아를 병행해낼 때면 '그래도 잘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곤 한다. 성실하게 능력을 키워 가면 여자, 엄마, 노동자로서 모두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나의 기대는 불어난 몸과 시류를 따라가지 못하는 외모로 한순간에 무너졌고, 남은 건 '자기관리가 안 되는 애 엄마'라는 꼬리표였다. 저자의 지적대로 외모의 위력은 나의 일상이 지닌 가치를 "너무나 간단하게 무화"시켰다.
출산 전만 해도 '여자다운' 외모를 쉽게 되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원래 특별히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적당히 먹고 열심히 움직이면 적정한 몸무게가 유지되는 체질이었으니까. 임신으로 15kg이나 쪘지만 아이가 방을 빼면 자연스럽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애를 낳고 달라진 건 내 몸이 아니라 몸의 메커니즘이었다. 분명 깨어 있는 동안 아이에게 분유 타 먹이고, 안아서 재우고, 젖병을 닦고, 청소기를 돌리며 쉼 없이 움직였다. 밥 한술 뜨려 할 때마다 아이가 안아달라고 울어서 끼니를 제때 챙겨 먹지 못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데도 불어난 몸무게가 쉽게 줄지 않았다.
반면 TV나 잡지에 나오는 연예인 엄마들은 하나같이 늘씬했다. 애를 낳은 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예전 몸매 그대로였다. '바쁘고 부지런하게 살아도 살이 안 빠진다'는 억울함은 완벽한 외모를 지닌 그들 앞에 설 때마다 무색해지는 듯했다.
우리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저자는 나를 포함한 많은 출산 여성들이 이 같은 좌절감을 겪고 있다고 전한다. "출산 후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대중매체를 통해 '아가씨 같은 아줌마'의 이미지가 부상하면서 큰 압박감을 가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결국 사회가 떠받드는 외모의 기준에서 탈락한 엄마들은 '게을러서 뚱뚱하다'는 시선에 억울해하면서도 "사회적 시선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좌절하고 죄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포기한 아줌마'로 정의된 그날 이후, 잠을 줄이고 없는 시간을 쪼개 외모에 신경 쓰려 노력했다. 나갈 때는 꼭 유행하는 옷과 화장품으로 치장했고, 저녁에는 바나나, 방울토마토, 삶은 달걀 같은 것들을 먹으며 군살을 빼보려 했다. 아줌마로 불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자신을 포기했다'는 말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돼도 이전의 나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에 금을 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외모 관리 프로젝트'는 B형독감에 걸리면서 시작한 지 약 3개월 만에 중단됐다. 아픈 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일주일 동안 다시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했다. 일과 육아로 점철된 일상에서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무인도에 갈 때 꼭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추리듯, 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꼭 지켜야할 것들만 노트에 정리해보기로 했다. 잠, 책, 가족과의 식사, 친구와의 만남, 나만의 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