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연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아버지가 사진관을 그만둔 지 벌써 만 5년이 지났구나. 아마, 그 5년 동안 평생 겪어보지 못한 별스러운 사람을 다 겪어본 듯하다. 시련일지 재미일지 스트레스로 인해 이가 4대나 빠질 정도면 대단한 사람(동료라고 하기에도 뭐한)들을 겪은 게 분명하다.
이러한 현상은 내가 좋으면 남도 좋겠지 하는 강팔지고 모지락스러운 세상 물정 모르는 아버지 탓이 분명하다. 그러나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때때로 아버지 역시 남에게 고통도 안겨주었으리.
꽃이 피고 꽃이 진다.
나뭇잎 떨어지고
그 앙상한 가지에 눈이 쌓여
삶의 무게를 더해준다.
그리고, 또 봄이 오면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같은 희망 한 가닥을 붙들고
앙상한 가지의 눈을 털어내며 또 꽃을 피워낸다.
나도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간다. 새해가 온다고 거창한 계획을 세워본 적도 없다. 해를 보내며 뒤돌아본 적도 없다. 해 뜨기 전에 자는 너희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출근했고 다음 날 아침 퇴근하면 너희들은 이미 출근을 하고 없었지.
5년을 한결같이 오가던 지하철 스무 정거장이다. 2018년 개의 해, 너희들은 달라질 일이 있겠지만 아버지야 달라질 게 뭐 있겠나? 그저 내 생의 마지막이라 여기는 직장생활에 충실히 하고자 애를 쓸 뿐이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오늘은 구정 전이고 해서 아버지가 몇 가지 당부의 말은 전하고 싶구나. 잔소리라고 고깝게 듣지 말고,
첫째
가난을 무기로 삼아 남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지 마라. 너의 가난을 사회 탓으로 돌리지도 말 것이며 자신을 비하하거나 자신을 왜곡하지 말아라. 차라리 가난을 생의 자양분으로 삼아 눈앞에 당장 보이는 현실만을 쫓지 말고 너만의 생의 가치를 찾아라.
둘째
매사에 감동하는 습관을 가져라. 네 심장의 두근거림보다 더 큰 그런 감동 말고 그저 "어머 어머" 할 수 있는 그 정도의 감동이면 좋겠구나. 네 주위를 잘 돌아보면 감동할 일이 꽤 많지 싶구나. 그리고 그 감동으로 글을 쓰거라. 그 감동을 원고지 여섯 매 글로 쓰면 수필이 될 것이요 원고지 한 매 분량으로 쓰면 시가 될 것이다.
셋째
남들과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어라. 네가 짓는 미소만으로도 너는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된단다. 출근길 지하철에 앉아서도 네가 옆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만큼 네 가슴속에도 공간이 생길 것이며 그 공간을 뭇사람들은 사랑으로 채워줄 것이다.
넷째
알베르토 까뮈의 글을 읽지 않았다고, 플라톤의 향연을 읽지 않았다고 사람들을 무시하면 못 쓴다. 네가 까뮈를 읽고 있을 때 그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읽고 있었으며 네가 플라톤의 향연에 심취해 있을 때 그는 조병화 시인의 시를 외우고 있었느니라.
아이고, 잔소리가 끝이 없구나. 미안하다. 오늘은 아버지가 아주 재미있는 시 하나 읽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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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광에서 찍찍 소리가 나자 막내아들이 쥐를 잡는다며 부지깽이를 들고 뛰었다. 사랑방 아궁이에 검불을 밀어 넣다 말고 졸지에 부지깽이를 빼앗긴 어머니가 소리쳤다.
야, 이놈아
쥐가 농사짓더냐?
그 조그만 창자 낟알 한 줌이면 꽉 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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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라는 제목의 시는 바로 너의 증조할머니가 지은 시란다. 사람이 사랑이 깊으면 호통도 시가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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