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여행 갔다가... 이모가 되다

[안데스 자전거원정 ④]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간다

등록 2018.02.21 09:08수정 2018.02.21 09:08
0
원고료로 응원
지난해 회사에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다. 장기근속자 6개월 무급휴가. 내가 첫 번째 신청자가 됐다. 내 생애 가장 긴 휴가를 오직 2가지만을 위해 쓰기로 했다. 자전거 여행과 독서. 첫 번째 소원을 위해 지난 3개월 자전거 타기와 야영훈련을 했다. 그리고 지인들과 함께 37일간의 남미 자전거 원정을 떠난다. 참가자는 24번의 해외 원정 경험이 있는 김광옥 목사(62)와 전업주부 박정희씨(50), 그리고 직장여성인 나(58), 이렇게 셋이다. 3인의 좌충우돌 안데스 자전거 원정기를 소개한다 - 기자 말

 리마 신시가지 지역의 미라플로레스(Miraflores) 해안절벽
리마 신시가지 지역의 미라플로레스(Miraflores) 해안절벽 강복자

집 밖에서도 집에서의 일상 습관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애쓴다. 특히 일과의 패턴은 다르지만 하루의 시작은 같게 하고 싶다. 리마에서 첫 새벽을 맞고 싶었다. 오후 3시 40분에 기상해서 108배를 하고 좌선 명상을 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되고 시공간이 초월된 특별한 느낌이다.
 
오전 7시 30분에 호세와 함께 쿠스코행 버스 티켓을 알아보러 갔다. 어제 방문했던 TEPSA(탭사) 대신 침대버스인 크루즈델솔(Cruz Del Sur)를 이용하기로 했다. 1천km, 20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꼿꼿이 앉아가기는 무리일 터. 자전거를 버스 짐칸에 싣고 갈 수 있을지를 물으니 난색을 표했다. 나스카(Nasca)에서 많은 사람이 타기 때문에 공간이 허락지 않을 것이란다. 만약 승객들의 짐이 많다면 작은 짐이 우선이라 큰 자전거 박스를 내리고 다음 차에 실어 보낼 수도 있단다. 변수를 고려해 자전거와 큰 짐은 화물로 보내고 일행은 내일 표를 예매했다.
 
낮 12시에 케이나(Keyna)와 만나기로 했다. 게이나는 우리 원정대의 대장인 김광옥 목사님께서 후원 중인 키르기스스탄의 청년 김산(아이다르)과 함께 한국에 왔던 산 마르코스 국립대학(1551년 설립된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의 여대생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개발도상국 대외무상원조 프로그램 교육장학생으로 뽑혀 한국에 초청되었던 케이나의 한국어 실력은 한국어로 대학 강의를 듣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이다. 이번 남미자전거원정을 계획하면서 김산을 통해 목사님과 연락이 닿았고 리마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남미에서 맺은 인연

 김광옥 목사님은 리마에서 만난 케이나의 성품과 재능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난이 안타까웠다.
김광옥 목사님은 리마에서 만난 케이나의 성품과 재능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난이 안타까웠다. 강복자

케이나는 사근사근한 성격에 친절하고 붙임성이 있었다. 남미 최고 명문대학의 대학생답게 지력도 뛰어나고 지적 호기심도 왕성해 오랜만에 만난 학문하는 사람의 바른 태도를 가진 젊은이였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인디오 대학생의 꿈은 대학교수라 했다.
 
편모 가정의 외동딸인 그녀의 가정형편은 넉넉지 못했다. 가계수입은 엄마의 근로로 받는 월 30만 원, 케이나의 방학 때나 가능한 아르바이트로 15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월세 7만 원에 고정 최저 생활비를 지출하고 나면 다른 지출이 불가능했다. 페루의 자존인 마추픽추에도 가보지 못했다는 말에 목사님이 제안했다.
 
"우리와 함께 마추픽추로 간다."
 
애초 이번 남미원정팀의 대원은 목사님과 박정희씨 그리고 나 외에도 두 분이 더 있었다. 출발 직전에 불효를 할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두 분이 빠졌다. 함께하지 못한 분께서 환송식을 열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원정팀이 여행 중 칠레 와인을 즐기면서 피로를 풀도록 3백 달러를 여비에 보탰다. 목사님은 이 돈을 케이나가 잉카제국의 마지막 고도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사용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왕복 버스비와 숙식비 및 입장료를 합해 약 270달러 정도면 가능했다.

 김목사님의 제안으로 우리팀과 케이나는 가족의 연을 맺었다.
김목사님의 제안으로 우리팀과 케이나는 가족의 연을 맺었다. 강복자

목사님은 이 재능 있는 여대생이 꼭 교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서울로 유학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 했다. 리마에서 한국 왕복항공권이 300만 원. 여행 한번 안 하면 되는 이 돈으로 케이나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면 그렇게 쓰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즐거워하신다. 감읍하고 미안해하는 케이나에게 말했다.
 
"미안해할 것 없다. 내가 하나님께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일이다."
 
12월에 한국으로 초청하기로 약속하고, 김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주고 딸로 삼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키르기스스탄 청년 김산의 동생, 김해가 된 것이다. 나와 정희씨는 큰 이모, 작은 이모가 되었고 우리는 굳은 악수로 이 모든 선연에 감사했다.    

 케이나와의 인연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온정의 힘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케이나와의 인연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온정의 힘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강복자

케이나와 함께 미라플로레스(Miraflores) 해안절벽으로 갔다. C자형의 절벽을 향해 끝없이 태평양의 파도가 밀려오고 흄볼트(Humboldt) 해류의 기류가 물안개와 함께 다가와 나를 감싼다. 패러글라이딩이 천천히 내개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는 기류가 사람을 하늘로 실어 올리듯 원정팀의 형체 없는 이심전심 온정이 와인 30병을 하룻밤 새 마셔버린 것처럼 마음을 부풀게 한다. 사람으로 인해 절망하고 희망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살아간다.

 김광옥 목사와 김산
김광옥 목사와 김산 강복자

김산, 내가 아들을 낳으면 붙여 주려던 이름을 채 간 녀석이 저 멀리 키르기스스탄 산속에서 사는 가난한 녀석이다. 지금으로부터 만 3년 전,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에 자전거 여행을 갔다.
   
자전거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시간이 남아 고산 트래킹을 하기로 하고 호텔에서 한국어 가이드를 소개받았다. 근데 통역이라고 온 녀석은 한국말이 전혀 안됐다.
   
그래도 그냥은 보낼 수 없어 20달러를 손에 쥐여주고 보내려 하자 녀석 왈, 돈은 필요 없고 그냥 우리를 따라다니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그럼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7일간의 트래킹에서 그의 언행을 통해 녀석이 정말 쓸 만한 녀석임을 확신했다.
   
생후 4개월 만에 부모가 이혼해 여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했다. 학교는 키르기스스탄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시장에서 한국 연속극 비디오를 빌려 오셨다. 그걸 보면서 한국어를 독학했다고 했다. 그날부로 '내 아들 하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한국어 수준은 단어 몇 개 조합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트래킹 마지막 날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한국에 한번 가보고 싶은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단번에 초청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사정을 모른 탓이었다.


아무리 초청장을 보내도 감감무소식, 그래서 아예 내가 키르기스스탄 한국 주재 대사관에 직접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랬더니 돈을 공탁을 하고 초청하라고 해서 천신만고 끝에 한국 초청이 이루어졌다.
   
녀석이 한국에 와있는 두 달 동안 나는 매일 한글을 가르쳤다. 한국어를 배우는 틈틈이 양구며, 속초를 자전거로 함께 여행하면서 한국을 익히게 했다. 그리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다. 녀석은 그때부터 콧바람이 불어 귀국하자마자 전공을 한국어로 바꿔 2학년으로 편입했다.
   
하도 가상해 다음 해 내가 다시 키르기스스탄에 갔다. 역시 두 달 동안 한글을 열심히 가르쳤다. 이번에는 자기 힘으로 코이카에서 주관하는 두 달짜리 한국 연수 프로그램의 자격을 획득해 한국에 또다시 왔다. 
   
그 후 녀석은 한국 대학의 전액 장학금을 노리고 한국어 공부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정확히 나를 만난 지 만 3년 만에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의 6급을 획득했다는 소식이 왔다. 한국어 6급은 끝이다. 영어로 말하자면 토플 만점인 것이다.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내가 4급 시험문제도 봤는데 우리도 풀기 쉽지 않은 한국어 문제였다. 한국어 6급을 획득하자면 한문도 기본적으로 1800자는 알아야 한다. 참으로 기특한 놈이다. 지금 들떠 있다.
   
한국의 대학교에 4년 장학생으로 올 수 있는 조건이다. 이 녀석은 앞으로 뭔가는 될 놈이다. 나는 영어를 40년 공부해도 답보를 면치 못하는데, 내가 가르친 놈은 불과 3년 만에 한국어 국가고시에 만점을 맞았으니 그에게 한수 배워야 할 것 같다. 머잖아 한국에 온다. 불과 24세, 앞으로 어떤 인물이 될지 자못 궁금하다. by 김광옥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남미자전거여행 #케이나 #페루 #리마 #안데스자전거원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5. 5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