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옥 목사와 김산
강복자
김산, 내가 아들을 낳으면 붙여 주려던 이름을 채 간 녀석이 저 멀리 키르기스스탄 산속에서 사는 가난한 녀석이다. 지금으로부터 만 3년 전,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에 자전거 여행을 갔다.
자전거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시간이 남아 고산 트래킹을 하기로 하고 호텔에서 한국어 가이드를 소개받았다. 근데 통역이라고 온 녀석은 한국말이 전혀 안됐다.
그래도 그냥은 보낼 수 없어 20달러를 손에 쥐여주고 보내려 하자 녀석 왈, 돈은 필요 없고 그냥 우리를 따라다니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그럼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7일간의 트래킹에서 그의 언행을 통해 녀석이 정말 쓸 만한 녀석임을 확신했다.
생후 4개월 만에 부모가 이혼해 여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했다. 학교는 키르기스스탄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시장에서 한국 연속극 비디오를 빌려 오셨다. 그걸 보면서 한국어를 독학했다고 했다. 그날부로 '내 아들 하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한국어 수준은 단어 몇 개 조합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트래킹 마지막 날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한국에 한번 가보고 싶은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단번에 초청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사정을 모른 탓이었다.
아무리 초청장을 보내도 감감무소식, 그래서 아예 내가 키르기스스탄 한국 주재 대사관에 직접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랬더니 돈을 공탁을 하고 초청하라고 해서 천신만고 끝에 한국 초청이 이루어졌다.
녀석이 한국에 와있는 두 달 동안 나는 매일 한글을 가르쳤다. 한국어를 배우는 틈틈이 양구며, 속초를 자전거로 함께 여행하면서 한국을 익히게 했다. 그리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다. 녀석은 그때부터 콧바람이 불어 귀국하자마자 전공을 한국어로 바꿔 2학년으로 편입했다.
하도 가상해 다음 해 내가 다시 키르기스스탄에 갔다. 역시 두 달 동안 한글을 열심히 가르쳤다. 이번에는 자기 힘으로 코이카에서 주관하는 두 달짜리 한국 연수 프로그램의 자격을 획득해 한국에 또다시 왔다.
그 후 녀석은 한국 대학의 전액 장학금을 노리고 한국어 공부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정확히 나를 만난 지 만 3년 만에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의 6급을 획득했다는 소식이 왔다. 한국어 6급은 끝이다. 영어로 말하자면 토플 만점인 것이다.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내가 4급 시험문제도 봤는데 우리도 풀기 쉽지 않은 한국어 문제였다. 한국어 6급을 획득하자면 한문도 기본적으로 1800자는 알아야 한다. 참으로 기특한 놈이다. 지금 들떠 있다.
한국의 대학교에 4년 장학생으로 올 수 있는 조건이다. 이 녀석은 앞으로 뭔가는 될 놈이다. 나는 영어를 40년 공부해도 답보를 면치 못하는데, 내가 가르친 놈은 불과 3년 만에 한국어 국가고시에 만점을 맞았으니 그에게 한수 배워야 할 것 같다. 머잖아 한국에 온다. 불과 24세, 앞으로 어떤 인물이 될지 자못 궁금하다. by 김광옥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