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을 때 생기는 주름이 곡선이라면, 무표정한 얼굴의 주름은 직선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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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한 문장의 길이가 60자를 넘어가면 중간에 쉼표를 찍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문장이 너무 길면 주어와 술어가 호응이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비문이 될 가능성이 많게 된다. 이것을 인생에 적용하면 처음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게 되거나, 무의미한 삶이 되어버린다.
살아가면서도 쉼표는 필요하다. 일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돈을 벌어 여유 있는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니던가? 또는 일의 성취를 통한 보람을 가지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런데 현재 돈만을 위한, 일의 결과에만 집착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여유와 보람은 문장으로 따지자면 주어에 해당된다. 일을 통해 이것은 서술어로 표현되어져야 한다. 그런데 서술어가 돈과 일의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니 쉼표가 없어지고 인생 자체가 의미가 없는 비문이 되어버린다.
쉼표는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고 정신적인 여유도 포함된다. 손재주가 없는 나는 무엇이나 잘 고장을 내어버린다. 주택에 살다보니 잡다하게 손봐야할 경우가 많은데, 무언가를 고치려고 하면 잘 되지 않아 힘으로 하다보면 망가뜨려버리는 것이다. 억지로 하면 안 되는 것인데 힘으로 하다 보니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하는 결과가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아예 아내는 나에게 무엇을 수리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확대해서 생각하면 사는 것에도 억지로 해서 되는 것은 많지 않다. 공부하기 싫은 아이를 억지로 책상 앞에 잡아둔다고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여유가 배제됨을 의미한다. 억지란 말 속에는 '하기 싫은'이나 '안 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럴 때는 문장에서 쉼표가 필요하듯이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쉬어가야 한다. 즉 여유를 가져야할 때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여유란 말은 직선이 아닌 곡선의 삶을 살 때 가능하다. 결과만 생각하고 KTX만 탈 것이 아니라, 늦더라도 둘러가는 기차를 탈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게 된다. 창밖의 풍경만이 아니라 내면의 풍경도 보게 되는 것이다.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하다 보니, SNS에 올라간 내 사진은 거의 웃는 얼굴이다. 무표정한 삶이 아니라 웃는 삶이 되었다. 웃는 연습을 하다 보니, 얼굴에만 웃음이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웃음이 그려짐을 알게 되었다. 삶에 여유가 생겼다. 문장에서도 쉼표를 찍을 때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직선의 삶이 아닌 곡선의 삶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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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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