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911 상황실 근무자들의 호소

[이건의 미국소방 평론 7] 그들의 감정노동이 심각하다

등록 2018.03.05 17:25수정 2018.03.0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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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로 도넛을 먹고 바쁜 점심시간에는 대부분 기름진 배달음식으로 허기를 때우곤 한다. 하루 종일 커피를 입에 달고 살며 초과근무를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미국의 911 상황실 근무자들이다.

3억 명이 넘는 인구만큼이나 사건사고도 많은 미국에서는 911 상황실마다 하루 수백에서 수천 건의 신고전화를 받는다. 살려달라며 애원하는 목소리,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 빨리 오지 않고 무엇을 하냐며 내뱉는 온갖 욕설에 시달리다 보면 그야말로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를 때도 많다.

2013년 개봉된 할리 베리(Halle Berry) 주연의 영화 'The Call'을 보는 것도 911 상황실 요원의 고충을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다보니 그만두는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2012년 뉴욕시 소방(FDNY), 경찰(NYPD), 구급(EMS) 통합상황실을 구축하며 시간당 5만 여건의 신고전화를 소화할 수 있다고 자랑하던 뉴욕시 911 상황실도 그 이듬해 그만두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상황실 요원이 부족해 크게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 호소하는 '상황실 요원들'

 뉴욕시 911 상황실 근무자들이 신고전화를 받고 있다.
뉴욕시 911 상황실 근무자들이 신고전화를 받고 있다.NYC.gov

당시 부족한 인력 때문에 시간당 평균 180건에 이르는 구급요청 신고전화의 삼분의 일이 자동응답으로 넘어가 생명의 골든타임이 위협을 받기도 했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인력부족의 주된 원인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업무 스트레스에서 기인한다.

스트레스의 유형을 살펴보면 흔히 측은지심(惻隱之心)에 비유되는 '동정심 스트레스(Compassion Stress)', 강도, 폭행, 자살신고와 같은 강한 정신적 충격으로 연결되는 '위기상황 스트레스(Critical Incident Stress)', 피해자로부터 전달되는 '2차 트라우마 노출(Secondary Trauma Exposure)', 그리고 지속적으로 쌓여 발현되는 '누적 스트레스(Cumulative Stress)' 등이 있다.      


이런 스트레스들은 마치 유행성 전염병(Epidemic)과 같이 상황실 요원들에게 급속하게 번져 나간다. 일단 이런 증상에 노출되면 만성피로, 두통, 불면증에 시달릴 수도 있고, 집중력 저하, 불안감이나 우울증, 외로움, 약물의존, 공허감 등 정신적 질환을 앓을 수도 있다고 보고되어 있다.

모든 재난상황을 맨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이 바로 상황실 요원들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The first "First Responder"'라고 부른다. 즉 '가장 최초의 초동대응요원'이란 뜻이다.


이런 상황들은 전국적으로 한해 약 200만 건 이상의 출동관련 접수를 받는 119 상황실 근무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의 소방대원들 역시 대단히 긴장된 상황 속에서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와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장난전화, 취객의 전화, 잠긴 열쇠를 열어달라는 식의 긴급한 상황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전화는 소방관들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 

 지난2월 5일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상황실 근무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지난2월 5일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상황실 근무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이건

미국에서는 이미 이런 상황들로부터 상황실 요원들을 건강하게 지키는 방법이 소개된 바 있다.  우선은 술이나 카페인을 피하고 물을 자주 마시며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 여가시간을 충분히 활용해 삶의 즐거움을 찾는 것, 양질의 휴식과 수면을 취하는 것, 달리기나 빠른 속도로 산책하는 것과 같이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 효과적으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관리하는 법을 적극적으로 찾아 공부하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족, 동료 그리고 시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절대적이다. 소방관은 이미 비정상적인 상황 속으로 직접 들어가 사람을 돕겠다고 서약한 만큼 주변사람들의 이해와 격려가 큰 도움이 된다.

아울러 119 상황실은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할 때만 이용한다는 깨어있는 시민의식도 요구된다. 아파트 단지 주변에서 힘차게 울어대는 새소리의 볼륨을 줄여 달라는 요청도, 부부싸움으로 인해 잠긴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몰상식의 극치를 보여줄 뿐이다. 

매순간 긴장감과 높은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한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소방관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도움을 줘야 할 때다.  
#이건 소방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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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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