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파업의 관덕정 광장> 강요배 화백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관덕정 광장에서, 1947년 3월 1일 제주4·3의 도화선이 되었던 3·1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의 발포로 28주년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빠져나오던 군중 가운데 6명의 희생자와 8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곳이 바로 관덕정 앞 광장이다.
이 사건에 대한 항의로 1947년 3월 10일부터 제주도 전도에 걸친 민관총파업이 벌어졌다. 미군정 당국은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철도경찰 등 응원대를 제주도에 대규모로 급파했다. 이때 검속된 인원이 2500여 명에 이른다.
1947년 당시 관덕정 인근에 제주경찰감찰청이, 맞은편 골목 안으로 제주도립병원이 있었다. 3․1절 기념대회가 열렸던 제주북국민학교는 관덕정의 서북쪽 500m 지점에 자리해 있었다. 1949년 6월 6일 교전 중 사망한 무장대사령관 이덕구의 시신이 관덕정 앞에 전시됐고, 주민들은 이를 (강제로) 관람해야 했다. 또한 신축년(1901년) 이재수 항쟁 당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살육당한 곳도 바로 이 광장이다.
관덕정그대는 아는가여기 관덕정 앞 광장에서의1947년 3월을 미군정 경찰의 발포로 인한 무고한 희생과그에 저항한 전 도민적인 장기파업을 그대는 보는가십자가에 매달려 전시되었던장두의 시신을
역사를 함몰시키려는 듯그 시신에 꽂혀 있었던 조롱의 숟가락을 (중략)그대 말하는가이 관덕정 광장 5백년 치욕과 통한의 역사를 바람에도 의연히 펄럭이는 탐라 자존의 깃발을이제 다시 노래해야 할 해방과 통일의 그 4·3의 봄을 김경훈의 시 '관덕정에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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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의 도화선 3.1사건의 무대가 된 관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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