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을 제한 받고 있는 여성이주노동자의 현실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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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옴난은 비닐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사장은 젊은 여자 둘이 생활하는 비닐하우스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쉬는 시간에 둘 사이에 천연덕스럽게 앉아서는 엉덩이를 툭툭 치고 어깨를 끌어당기며 입술을 내미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둘은 떨어져 있다가는 사단이 날 거라는 걸 예감했지만 피할 방법이 없었다.
사장은 농약을 칠 때면 분무기 줄을 잡을 사람이 한 명 밖에 필요 없다는 핑계로 둘을 떼어놓았다. 마스크도 없이 농약을 치는 일도 힘들었지만 분무가 끝나고 돌아오는 트럭 안에서 사장 옆자리에 앉는 일은 더욱 고역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장은 둘에게 뒤에서 껴안고 가슴을 움켜쥐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참다못한 둘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사장은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며 노발대발했다. 둘이 경찰서로 달려가기까지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말도 통하지 않는 경찰서에서 사장에게 잘못을 추궁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결국 지역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의 지원을 받아 두 사람이 사업장 변경하면서 사건은 유야무야됐다. 사업장 변경 후 둘은 제주를 떠나 용인으로 갔다. 사장에게서 멀리 떠날 수 있어 안도했다. 치옴난은 성추행 피해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장이 똑같은 짓을 다른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에게 할 것이라는 걸 떠올리면 끝까지 사장에게 잘못을 따지지 않은 걸 후회한다. 그가 자신에게 사업장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면 성추행에 그냥 넘어가는 일은 절대 없었을 거라고 말하는 이유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국민'에서 '사람'으로"6.13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을 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에 설치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개헌안 마련 작업에 들어갔다. 국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내 삶을 바꾸는 개헌, 국민헌법'이라는 제목 아래 주목받는 안건들을 정리하고 의견을 받고 있다.
그 중 외국인과 관련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 '국민'에서 '사람'으로"라는 안건이 눈에 띈다. 현행 헌법은 제2장 제목을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고 하여 권리의 주체를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제11조 평등권 등 개별 기본권 조항에서도 기본권 주체를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밖에 평등권,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통신의 자유, 양심·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에서도 모두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이라는 단어 때문에 고용허가제 헌법 소원 등에서 보듯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들은 이 땅에서 평등권과 행복추구권 등에 있어서 일정 부분 제한받아도 되는 존재로 치부돼 왔다. 헌법 제6조2항에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해 놓고도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존재이지, 당연히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그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를 국적이 다르다고 제한해도 될까? 성폭행을 당해도 임의로 사장의 마수를 벗어나면 불법체류자가 되도록 만드는 법이 온당할까? 물론,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기본권 부여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기본권의 내용에 따라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하자는 논의까지 막을 이유는 없다. 200만을 넘어 앞으로 더 늘어날 체류 외국인들과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 등을 고려할 때 좀 더 진지하게 이 부분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는 누구나 어느 곳에서든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새로 마련된 헌법에는 차별과 법률 공백지대가 없는 세상, 이주민도 우리 사회 공동체 구성원임을 인정하고, 인권보호가 당연한 나라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미래 세대에서 국민의 권리는 사람의 권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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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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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성추행 사장 고소를 취하했나... 이유가 더 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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