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원장, 아베와 회담... 아베 "비핵화 전제 북과 대화 평가"13일 서훈 국정원장이 도쿄 총리 공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서 남북·북미 정상회담 추진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 자리에서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과 대화하는 것을 일본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아베 정권은 연일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며 여론의 극적전환에 애를 쓰고 있는 모양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19일 아베 총리는 "국제사회가 일치단결해 (북한이)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때까지 최대한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며 훈시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자위대의 고위 장교를 배출하는 방위대학교 졸업식 자리였다.
이날 아베 총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자위대가 해상에서 '화물 빼돌리기'를 하는 북한을 감시한다고도 말했다. 게다가 "(자위대의) 방호함과 초계기는 광대한 주변해역에서 수상한 선박의 동향을 계속 뒤쫓아 몇 번이나 (북한의) 위반행위를 방지해 주었다"며 '북한의 위협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자위대'를 띄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교도통신은 "정상회담이 결정돼 북미는 융화노선의 키를 잡았지만 강경한 자세를 풀지 않았다"며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을 진단했다. 한국언론에서는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재팬패싱에 빠진 아베 정권이 북일정상회담을 모색하고 있단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일본정부가 설정한 대북관계는 한반도평화로 나아가려는 남북·북미 관계와도 크게 동 떨어져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스스로 재팬패싱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재팬패싱의 실체는 무엇이며 단초를 제공한 것은 누굴까.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의도에 대한 분석은 뒷전으로 미룬 채, 북한을 가리켜 위험한 불량국가로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아베 정권의 패착임을 짚지 않을 수 없다.
배경에는 북한을 합리적 대화상대로 인정해서는 '결코 안 되는' 정치인 아베의 뒷이야기도 숨어있다. 지난 2002년 당시 코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벌였다. 이 자리에 일본정부 부대변인 격인 아베 관방부장관이 동석했다.
북한은 일본이 과거사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취지의, 일본은 북일국교정상화의 조건으로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을 송환하라는 의제를 꺼내들었다. 결국 북일간 국교정상화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아베 관방부장관의 "적당히 타협하면 안된다. 회담을 걷어치우고 돌아가자"는 말만큼은 언론에서 대서특필돼 일본인들의 뇌리에 남았다.
북풍몰이를 바탕으로 자민당 내에서 세력을 키워온 아베는 2006년 제1차 아베내각을 꾸려 집권했다. 비록 건강상 문제를 이유로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조기 퇴진했지만, 2012년 중의원선거(총선)에서 다시 전면에 나선 아베는 정권을 재탄생시켰다. 한번 퇴진한 '전 총리'의 재기가 지금껏 일본 정계에서 없었던 일이었던 만큼 대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북한 때리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아베의 전략이 정권연장에 주효했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지난 2017년의 중의원선거를 "국난돌파선거"라 명명했다. 북한이 미국을 사정권에 넣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을 개발한 만큼 자신이야말로 나라의 어려움(북한의 핵위협)을 물리칠 적격자란 아베의 주장에 힘입어 자민당은 압승을 거뒀다.
이후 이른바 국난돌파를 위해 자위대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평화헌법(일본헌법 제9조) 개정야욕을 가감 없이 드러낸 아베 정권은 한동안 순조롭게 순항했다. 일본정부가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한 사학재단에 국유지를 헐값에 넘기는 특혜를 제공했단 의혹을 비롯해 정권 고위인사들의 설화가 잇따랐지만 모두 묻혔다. 당시엔 또다시 북한, 북한 덕이란 평가가 쏟아졌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아베 정권은 그동안 '북한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구실로 정권연장과 군사력 증강을 기획해 왔다. 그런 만큼 아베 정권이 평화의 문을 열어젖힌 북한을 항해 '어 이건 아닌데'라며 당황스러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북일정상회담 이뤄내려면
북한 때리기로 출범한 아베 정권에게 북풍몰이의 흥행은 집권연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양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남북·북미정상회담에서 정전협정 종식과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이 화제로 오를 것이란 예측이 잇따른다. 위기 때마다 아베 정권을 뒷받침해주던 '북한의 핵위협 방패' 뒤로 더 이상 숨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최근 일본에서는 아베 정권이 재무성에 입김을 넣어 공문서를 위조했다는 역대 급 스캔들이 점화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아베 정권의 국정지지율은 20%대로 급락했다. 이전 같다면 '북한위협에 대처하는 적격자 아베'로 묻힐법 했지만 여론은 아베를 외면하고 있다.
제아무리 아베 총리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단순한 정지로는 불충분"하다며 여론을 되돌리려 해봤자 때는 늦은 것으로 보인다. 이 흐름이 이어지면 오는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낙선할 가능성이 높다. 현지에선 또 다른 대북강경파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가 차기 자민당 총재 겸 일본 총리로 올라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남북·북미정상회담의 결과를 보고 북일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단 아베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전망은 무척 어둡다. 당장 북한이 일본의 대화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공산이 크다. 실제로 아베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회담에서 북일대화를 거론하자 북한의 대응은 심상치 않았다.
북한은 17일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일본 반동들은 과거 범죄를 역사의 흑막 속에 묻어버리려 파렴치한 망동을 걷어치우고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모든 죄악에 대해 지체 없이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일본의 태도변화가 앞서지 않는다면 북일정상회담에 나서지 않겠다는 북한의 명확한 신호다.
앞서 14일 일본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북일정상회담에서 핵미사일과 납치자문제를 거론하겠다"고 밝혔다. 스가 관방장관의 발언에는 일단 한반도평화라는 국제여론에 편승은 하되 북한 때리기를 놓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있다. '북한이여 이대로 남아있어주오'란 일말의 희망(?)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반면 지지통신 등 일각에선 일본정부 고위 인사의 발언을 인용해 "김정은 위원장은 냉정히 상황을 보고 있다"는 일본 정부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 정부가 북일정상회담에 의욕을 보이며 물밑준비에 나서려는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
종합하면 아베 정권의 목표는 북일정상회담을 추진하되,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피해자 문제 등을 언급하며 지지율이 꺼져가는 정권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10일 사설에서 "한미양국에 (북한과) 졸속적인 교섭과 타협을 (맺지 않도록) 경계해 냉정한 대처를 촉구하는 것이 일본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한미일 3개국의 다층적인 협의를 쌓아 보조를 흩트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일본정부의 입장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일본정부가 부디 평화를 걷어차는 행위만큼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일본의 중요한 역할'은 우선 피해자중심주의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잘못을 솔직하게 사죄하고 반성하는 데부터 시작해야 한다. 북한위협을 들러리로 세우는 한미일 군사연계로 자위대의 강화를 시도하는 야욕을 줄곧 뿜어내서야 평화를 바라지 않음을 자인하는 꼬락서니가 아닐까.
'한반도평화실현'이라는 당연한 답안제출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손해를 보는 것은 일본이다. 아베 정권이 북일정상회담을 목표로 삼겠다면 당장의 위기를 어물쩍 넘기려는 '물타기'가 아니라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아베 총리가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이리저리 표류하는 난파선의 선장으로 남겠다면야 굳이 말릴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 경우 북일정상회담, 나아가서 북일국교정상화의 숙제는 차기 정권의 몫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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