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암은 '곤지암'이라는 바위의 이름을 따 왔다. 과거 실촌면이라는 이름도 곤지암IC이 알려짐에 따라 바뀌게 되었다.
박장식
곤지암은 과거부터 서울과 이천, 여주, 충주 등 곡창지대를 잇는 관문 역할을 했다. 현재도 고속도로의 상습 정체구역으로 알려진 곤지암IC는 이러한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짐을 싣고 오던 사람들은 잠시 눌러앉아 한 끼 식사를 하기도 하고, 곤지암의 장에서 물건을 거래하기도 했다.
'곤지암'의 이름은 신립 장군의 설화에서 비롯했다. 임진왜란 때 선발대로 나섰다가 참패한 후 자결한 신립 장군의 혼이 연못 앞 바위인 곤지암에 붙어 이백 년간 말 타고 가는 이들을 괴롭혔단다. 한 장수가 지나가다 열이 받은 나머지 신립의 묘소를 찾아가 따졌다는데, 그 날로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며 저주가 풀렸다고 한다.
곤지암의 연못은 지역 개발에 복개되었다만 그 바위는 현재까지 곤지암읍 소재지에 두 쪽으로 남아 경기도 문화재 85호로 지정되어 지역의 상징물이 되었다. 장수가 찾아가 따졌다는 신립 장군의 묘소도 <곤지암> 영화의 모티브가 된 곤지암 남양정신병원과 1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곤지암에 가면 '소머리'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