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처럼 작은 한옥 한 채가 내 앞에 서 있다. 한옥이 품고 있는 건 마당만이 아니다. 지붕선을 타고 보이는 저 하늘도 품고 있다.
황우섭
한옥에서 살아야겠다고 처음부터 맘 먹은 건 아니었다. 단독주택에 살아보고 싶다고 마음을 먹은 뒤 서울 시내 곳곳 오며가며 들른 부동산을 통해 보러 다닌 집들 중에는 오히려 일반 주택이 많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 한옥은 애초에 선택지에 들어 있지 않았다. 뭔가 특별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 사람만 들어가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한옥은 춥고 불편하며 방범을 비롯한 여러 문제로 살기에 편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옥에 눈을 돌린 건 서울 경복궁 옆 서촌에 작은 한옥 한 채가 지어지는 과정을 책으로 만든 뒤부터였다. 이 책을 만들기 시작한 건 집 짓는 과정의 이야기가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진 원고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보통 집을 짓는 과정을 담은 책의 저자는 그 집을 설계한 건축가인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집주인이거나.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 집을 직접 지은 목수였다. 나 역시 책을 '만드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어떤 결과물을 볼 때 그 뒤에 가려진, 그것을 진짜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의 날 것의 원고를 보았을 때 내 손으로 꼭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서촌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작은 한옥 한 채의 탄생기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한옥은 한옥이고, 책은 책일 뿐이었다. 책을 만들면서도 여전히 한옥은 내가 가닿지 못할 것이기에 그저 부러운 대상이었다. 내가 만드는 책 속의 세상사일 뿐 내 일은 아니었다.
책을 만들면서 밥 먹고 하는 일이 오로지 한옥 짓는 것밖에 없는 저자와 의기를 투합했다. 우리는 제법 말이 잘 통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좋은 집을 짓기 위해 늘 탐구하고, 집 짓는 일이라면 늘 호기심 천국에 들어선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신나서 일하는 저자와 만날 때마다 현재 짓고 있는 집, 그러니까 한옥 짓는 이야기를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그를 만나러 자연스럽게 한옥 공사현장도 숱하게 들렀다. 집을 짓는 분을 만나게 되니 그 집의 주인분들과도 뵙게 되고, 한옥에 살게 되기까지의 매우 현실적인 문제, 한옥에 사는 장점, 단점 등을 매우 '리얼'하게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함께 만드는 책의 주인공인 서촌 작은 한옥의 집주인과도 각별해졌고, 틈만 나면 서촌의 골목을 다니며 도시형 한옥의 어제와 오늘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다른 세상의 일이기만 했던 한옥이 점점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서울시 한옥지원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것도 한몫을 했다(
http://hanok.seoul.go.kr/front/kor/life/lifeGuide.do?tab=3).
몇 해 전부터 서울은 물론 각 지자체마다 한옥을 고쳐 살거나 새로 짓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금액을 지원하고, 낮은 이자로 융자를 해주는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그 덕분에 예전에 비해 한옥을 지으려는 이들이 늘어났고, 수요가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비용은 물론 기술 등의 사정도 훨씬 좋아졌다.
이런 여러 상황 덕분에 나 같은 이들 역시 한옥에 살아볼 엄두를 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물론 여전히 일반주택에 비해 비싸긴 하지만 꿈처럼 다른 세상의 일이기만 했던 때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