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표지.
권오윤
이 소설은 장르상 범죄자와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대결을 다룬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범죄자, 피해자, 수사관의 입장에서 서술된 이야기가 한 장씩 번갈아 가며 나옵니다. 각 장 첫머리에 각각 A, B, C를 붙여 놓아 시점을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따라서 독자는 각 인물의 상황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 시점에서 다른 시점으로 바뀔 때마다 다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지죠. 그래서 자꾸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결말로 갈수록 다소 뻔한 설정이 이어지지만, 어쨌든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반 사람들이 공감하기 힘든 범죄자의 이상 심리나 수법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한 것이 큰 몫을 합니다. 이런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잘 따라갈 수 있을 정도죠. 가끔은 정도가 지나쳐 '너무 시시콜콜 설명 안 해도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기는 하지만요.
이 책에 등장하는 범행 수법은 단순하지만, 꽤 위협적입니다. 별 의심 없이 스마트폰과 SNS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맹점을 역이용하거든요. 이메일 피싱을 통한 비밀번호 해킹이라든지, 페이스북 친구 추천 기능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과정을 읽다 보면 '어쩌면 내가 당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 섬뜩할 때가 있습니다.
피해자인 30대 비정규직 여성 아사미의 심리와 생활상 역시 비교적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사미는 중위권 대학을 나와 엇비슷한 비정규직을 전전해 온 보통 여성입니다. 그래서 일본 못지않게 학력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젊은이라면 공감이 갈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50대 남성인 관계로 새로운 통찰을 보여 준다거나 디테일이 뛰어난 편은 아닙니다.
작가 시가 아키라는 방송국 간부인데, 데뷔작인 이 소설로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상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이 상은 명칭만 '대상'일 뿐, 일종의 신인상 개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완성도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오히려 실망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작가가 될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데 의의를 둬야겠죠.
한 가지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은 후반부에 아사미에게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일종의 반전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남성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선정적인 묘사를 추가하기 위해 들어간 설정처럼 보입니다.
범죄 소설의 쾌감을 높여 주는 요소 중 하나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명확한 선악 대비라고 생각합니다. 무고한 피해자 대 악의적인 가해자 구도가 보통이지만, 때로는 피해자가 악인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가해자의 의도가 선한 복수의 일환이었다는 식으로 설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는 통쾌하고 후련한 느낌보다는 찜찜한 기분으로 책을 덮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책이 간과한 것이 그런 부분입니다. 아사미의 과거 설정 때문에, '악질적인 사이코패스의 피해자이긴 하나 그녀도 잘한 것은 없다'는 식의 이야기처럼 들리거든요. 마치 힘겹게 '미투' 폭로를 한 피해자에게 '너도 잘한 것 없다'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처럼요. 쉽게 잘 읽히는 이야기지만, 좋은 책이라고 선뜻 추천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시가 아키라 지음, 김성미 옮김,
북플라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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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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