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덕왕릉전면에서 바라본 헌덕왕릉, 현재의 모습은 1970년대의 정비 과정을 통해 조성되었다.
김희태
일제강점기 때 제작된 <조선고적도보>에는 헌덕왕릉을 찍은 사진이 남아 있는데, 이 사진을 보면 신라 중대 이후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신라 왕릉 가운데 그 훼손 정도가 가장 심하다. 사진에서 난간석은 2개를 제외하면 남아있지 않고,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탱석과 판석 등도 그 훼손 정도가 다른 왕릉에 비해 심한 편이다.
기존의 왕릉처럼 헌덕왕릉에도 십이지신상을 비롯해 석물이 설치가 되었지만, 홍수로 인해 흩어졌다. 현재 십이지신상 중 쥐(子), 소(丑), 토끼(卯), 호랑이(寅), 돼지(亥) 등 다섯 상만 남아있으며, 헌덕왕릉의 것으로 전하는 석물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된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하다.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헌덕왕, 혼란스러웠던 시대헌덕왕(재위 809~826)의 이름은 언승으로, 소성왕의 친동생이다. 헌덕왕은 자신의 친형인 소성왕의 아들 애장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했기에 흔히 신라판 수양대군으로 불린다. 왕위에 오르는 과정이 수양대군(=세조)과 헌덕왕 모두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점이라면 조선의 경우 장자 계승의 종법질서가 있었던 반면 신라와 고려는 왕의 형제도 왕위 계승의 자격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헌덕왕이 명분도 없이,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 애장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점은 분명 문제가 되는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