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교회 내부 제암리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는, 그리 크지 않은 시골 교회이다. 대도시에 숱하게 있는 대형 교회보다 정감이 간다.
홍윤호
이 같은 일본의 만행은 비폭력 평화 운동으로 시작된 3 .1 운동이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확산되면서 일본에 대한 격렬한 저항과 시위가 본격화된 시점에서 발생하였다.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도 3월부터 만세운동이 시작되어 3월 31일 발안주재소가 습격당하는 등 사건이 확대되었고, 4월 5일에는 발안 장터에서 대규모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일본 경찰이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청년들이 경찰에게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이에 청년들이 밤마다 제암리 뒷산에 올라가 봉화를 올려 지역 주민들을 독려하였고, 만세운동은 계속되었다. 결국 일본군 검거반이 출동하여 시위를 진압하고 주모자를 체포, 고문, 통제하는 과정에서 비극이 발생하였다.
사건이 알려지자 일본 측은 조선에 주둔한 지 얼마 안 되어 현지 상황에 익숙하지 못한 일부 군인들이 일본인들의 희생에 흥분하여 일으킨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해명하였다. 하지만 조사에 의해 사건 전개 과정이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전개되었음이 알려졌다. 자신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한 변명이었던 것이다.
현장 지휘 책임자인 아리타 중위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여론의 지탄이 이어지자 7월 17일에 가서야 군법회의에 붙여졌지만, 역시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 처벌은 없었다.
선교사에 의해 알려진 사건이 이 정도였으니,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한 가지 이 사건에서 기억해야 할 점은, 사건의 배경이 된 발안 장날의 시위가 지역 기독교인과 천도교인들의 제휴에 의해 종교의 차이를 떠나 거족적 차원에서 결성한 '구국동지회'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독립'의 기원 아래 모두가 뭉친 사례인 것이다.
또 하나, 이 사건을 알린 스코필드 박사(한국명 석호필)는 3.1 운동 당시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한 인물로, 일제에 의해 반강제로 추방된 후에도 전 세계에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데 노력하였다. 그리고 1958년 다시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서거할 때까지 후학을 키우는 한편, 고아와 어려운 학생을 돌보는 데 여생을 바쳤다.
현재 그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유일한 외국인으로 안장되어 있다.
(한때 한국인들도 많이 본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2006~2009 방영)>의 주인공 스코필드가 석호필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것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스코필드 선교사의 한국 이름에서 유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