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델라 봉(Alto Pradela)을 걷고 있다.
차노휘
그래도 6시 30분이었다. 다행히 발목 부기는 없었다.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배낭을 메고 스틱을 들고 알베르게 밖으로 나갔다. 아직 해 뜨기 전이었다. 노란 빛이 알베르게를 감싸고 있었고 맞은편 산은 시커멓게 다가왔다. 갑자기 피가 끓었다. 태양에 시커멓게 얼굴이 타도 걷고 났을 때의 만족한 쾌감을 나는 알고 있었다. 생각이 많을 때는 정공법을 택하던 나였다.
'걷자! 배낭을 메고! 그것도 우회 루트가 아니라 산 하나를 넘자!'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를 떠나 트라바델로(Trabedelo)로 가려면 930m 프라델라 봉(Alto Pradela)을 넘어야 했다. 고지를 피해 가는 우회 루트도 있었다. 주도로를 쭉 따라가면 된다.
나는 산을 넘기로 했다. 아스팔트길은 평평해도 되레 발바닥이 쉬 피로해졌다. 지루하기도 했다. 가지고 온 책에도 산을 넘는 방법을 추천하고 있었다. 마을 외곽에 있는 부르비아(Puente de rio Burbia) 다리를 건너자 순례자 한 무리가 우회 루트로 향했다. 나는 오른쪽 가파른 자갈길로 올라섰다.
산을 내려가면 도착하는 트라바델로(Trabedelo)까지 세 시간이 걸렸다. 세 시간 동안 나는 엔돌핀으로 충만했다. 올라갈수록 전날 묵었던 도시가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고 산 건너편에서 태양이 떠오르자 햇살이 점점 영역을 넓혔다. 쫓겨가듯 계곡으로 몰려간 그늘은 계곡을 더 깊게 만들었다.
나를 앞서가는 사람도 뒤따라오는 사람도 없었다. 혼자서, 이 산야를 전세 내버렸다. 모두들 우회도로를 택한 듯했다. 나는 울창한 산길이 더 좋았다. 흙냄새 나는 흙길은 포근한 감촉으로 발바닥을 어루만져 주었다. 전날, 날카로운 고통을 참아가며 한 발 한 발 내디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걸음걸이였다.
그리고 오세브레이로(O'cebreiro)를 6km 남겨 둔 루이텔란에서 멈췄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오세브레이로에서 하룻밤 자기를 원했다. 그곳은 순례자들로 북적거릴 거였다. 나는 조용한 곳을 원했다(하지만 6km라지만 1300m 고지라 힘든 코스였다. 머물기를 잘했다는 것을 뒤에 알았다).
경험상으로, 휴식이 필요하거나 생각할 장소로는 한적한 시골 알베르게가 좋다는 것을 안다. 칼사다 데 코토(Calzada de Coto)도 그랬고 무리아스 데 레치발로(Murias de Rechivaklo)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머물고 있는, 루이텔란(Ruitelan)에 있는, 페케뇨 파탈라(Pequeno Patala) 알베르게도 마찬가지이다.
소싯적에 신발 바깥쪽에 신경을 쓰곤 했던 것인데
요즘 들어서, 발가락에 자주 땀이 차는 걸 느끼면서
어쩌다 그렇게 신발의 안쪽을 들여다보게도 되었다
큽큽한 발 냄새가 먼저 와서 들키는가 싶더니
끌고 온 길들의 요철, 지난 시간의 버짐 같은 기억들이
껌처럼 들러붙어 있는 것을 마주치기도 한다
말하자면, 신발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
한때는 그렇게 바깥쪽을 향하여
온전히 빛이 나기를 바랐던 열망의 반대쪽에 자리한
순식간에 코를 싸쥐게도 하는 그것이
신발을 더더욱 신발답게 하는 안쪽의 일이었음을
유심한 마음으로 느껴보기도 한다.
- 정윤천 〈안쪽을 위하여〉 전문
이런 여유로움은(신발 바깥쪽) 보이지 않은 것들의 힘(신발 안쪽)이다. 그것은 많은 '큽큽한 발 냄새' 즉, '순식간에 코를 싸쥐게도 하는 그것' 때문인 것이다. '끌고 온 길들의 요철, 지난 시간의 버짐 같은 기억들이
껌처럼 들러붙어 있는 것을 마주치기도 고민하기도 결심하기도 하면서 실행을 한 덕이다. 순수하게 흘리는 땀과 긍정적인 자기 마취... 펼쳐놓기도 두려운 이러한 흔적들이 나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인 것이다.
바에서 여유를 부리며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카디스(Cadiz) 출신 고등학교 남학생과 가족 그리고 독일인 20대 여성과 전에 만났던 스페인 여자 선생인 마리아호세도 같은 숙소에서 머물렀다. 우리는 이곳에서 제공하는(8유로) 식사를 하면서 내일 여정의 힘듦과 다음 숙소를 어디로 정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가방을 다음 목적지까지 배달하는 서비스를 신청했다. 주인 남자의 제안이었다.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도 따뜻했다. 이제 푹 쉴 일만 남았다.
까미노는 꽃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