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연
네 이놈! 나이 30이 다 돼가는 딸에게 어린이날이라며 매운 갈비에 술 사 먹이고 돈 봉투까지 건네는 아비는 죄졌더냐? 올해 어버이날에도 작년처럼 시집 한 권으로 때우고 말 테냐?
네가 예수면 아비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다, 이놈아. 고얀 놈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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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어버이날이었지. 퇴근했는데 아버지가 책상으로 사용하는 교자상 위에 못 보던 시집 한 권과 보리차 한 잔이 놓여있었지. 시집은 분홍 리본이 앙증맞게 붙어있었고 찻잔에서는 구수한 보리 향기 은은했지. 피곤함도 잊고 시집을 펼쳤는데 종이의 알싸한 향기 속에서 반짝 눈에 띄는 글귀가 있었지.
'아버지에게는 제가 예수입니다.'
어버이날 선물이었던 거였지. 손종수 시인의 처녀 시집 '밥이 예수다' 였어. 시인들이 사인하는 면지에 쓰여있는 너의 글귀를 읽고 착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 발에 키스하듯 '아버지에게는 제가 예수입니다'라는 글에 키스했지.
순간 세월호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 생각이 났어. 네가 아버지에게 종교(예수)나 다름없듯이 그분들에게도 자식은 종교(예수)나 다름없었을 거야. 눈물이 났어. 눈물은 통곡으로 변했고 밤새워 일하고 온 아버지는 그만 깜박 잠이 들었지. 얼마나 잤을까? 일어나보니 시집의 눈물 마른 자국마다 꽃이 피었는데 그 꽃 속에서 파도 소리와 사마리아 착한 어린 양들의 아우성이 들려왔어. 아버지는 진저리를 쳤지.
그래 네 말이 맞아. 자식은 부모님에게 예수나 다름없지. 종교나 다름없지. 오늘이 세월호 4주기라네. 4주기? 예수님(자식)을 잃은 그 부모님들에게 4주기는 의미 없는 일이야. 이다음에 그 부모님들이 돌아가셔도 심장은 따듯한 온기가 식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 부모님들은 죽어서도
예수님(자식)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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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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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입김 푸르게 춤추는 아침
손 전화가 바르르 진저리친다
멀리 가까이 방방곡곡 온 동네
눈 소식 카톡, 눈 사진 카톡,
살아 있어 반갑다는 맹렬한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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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진다, 눈부신 삶의 눈사태.
딸이 어버이 날 선물한 손종수 시인의 '밥이 예수다' 60쪽 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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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 소박하지만 아버지를 잘 아는 딸의 어버이날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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