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 놋수저와 작은할머니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 2018년 4월 20일

등록 2018.04.20 14:31수정 2018.04.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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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연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딸아, 너도 결혼했으니 곧 아기를 낳겠구나. 아버지보다 많은 교육을 받았고 보고 들은 게 더 많은 너에게 무엇을 가르치랴만 마주 앉으면 잔소리로 들릴까 하기 어려운 말도 이렇게 편지를 쓰니 쉽게 하는구나.

엄마는 너희들을 키우면서 우유를 단 한 번도 안 먹였다. 아무리 바빠도 너희들이 소풍을 간다면 엄마는 꼭 자기 손으로 김밥을 싸서 보냈고 간식도 간편식이 아닌 감자 고구마를 먹였다.

엄마가 꼭 잘했다는 게 아니라 너도 아기를 낳으면 모유를 먹이기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교육의 첫 시작은 아기를 가슴에 안고 젖을 물리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아버지는 믿는다. 귀한 내 자식을 어찌 엄마의 젖이 아닌 동물의 젖으로 키우겠느냐?

아버지가 오랫동안 사진관을 했지만, 돌사진 찍으러 오면 빠지지 않는 사진이 있다. 아기가 엄마 젖을 물고 잠결에 오물오물 젖을 빠는 모습이다. 사진을 인화해놓고 보면 그 잘난 왕자복과 드레스 입고 찍은 사진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아름다움의 극치' 더는 표현할 말이 없다.

딸아, 작은할머니와 아버지는 어린 시절을 한 마을에서 보냈다. 집 앞 제법 넓은 도랑물에서 발가벗고 개헤엄 치며 함께 자랐다. 입대 전부터 작은할아버지가 작은할머니 쫓아다니는 것을 봐왔지만 친구 동생이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군대를 제대 하고 나니 한 지붕 아래 한솥밥을 먹으며 사는 게 아닌가?


굼벵이 장타령 하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전후 사정이야 어떻든 본댁 어머니도 무심하게 지나가는 아버지 생일을 작은할머니는 해마다 잊지 않고 챙겨주신다. 그리고 작은집을 가면 작은할아버지와 아버지 숟가락은 항상 은수저를 내놓으신다.

작은할머니에게 있어 식구들 간의 수저에 따른 차별은 위아래 서열을 구분하는 잣대요, 아랫사람들에게 은수저를 사용하는 사람은 어른이니 어른 대접을 하라는 교육이다. 그러니까 사촌 여동생들에게 "집안의 어른이고 오빠니 함부로 하지 말아라."라는 무언의 말씀이신 게지.


아버지가 생각하는 가정교육은 이렇게 밥상머리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그런데 자식들이 부모보다 더 바쁜 세상이니 밥상머리에 마주 앉을 기회가 도대체 없구나. 밥상머리든 어디든 마주할 시간이 있어야 가정교육이고 뭐고 간에 가르칠 것이 아닌가? 딸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예전부터 마음먹고 이제야 실천에 옮긴다만 아버지가 편지를 쓰는 뜻은 어쩌면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많은 시간을 못 보낸 데 대한 아쉬움이리라.

딸아, 아비 말 잊지 마라.
가정교육의 첫 시작은 어미의 젖을 물리는 일이다.
밥상머리 교육의 시작은 어미의 젖을 물리는 일이다.

아버지가 좀 급했나 보다. 이제 막 결혼한 딸에게 별소릴 다 하는구나. 그러나 어쩌랴! 부모 마음이 다 그래. 네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을 네 시아버지가 본다면 세상에 둘도 없는 효도라 할 것이다. 예전에 아버지가 "시집을 가더라도 애 낳지 말고 신랑이랑 둘이서 즐기며 살아라." 이 말은 싹 잊어버리기 바란다. 아버지도 이렇게 생각이 바뀔 줄 상상도 못 했다. 허허.

작년 이맘때, 아버지가 아끼는 누이가 아기를 낳았는데 아버지가 축시를 지어 보냈더니 아기가 크면 보여주겠다며 좋아하더라. 한번 읽어보렴.

-

내가 네 외삼촌이야.

정승 판서 고대광실 마당 한편의 함박스러운 작약이 오며 가며 귀한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지만 그에 비할 바가 아니지.

이름난 절집 연못가에 피어난 연꽃이 세상 잘난 이들과 관세음보살의 칭송을 받는다지만 어림없는 일이야.

치자꽃 향기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제 어미 젖 물고 있는 갓난아기의 젖비린내만 하겠는가 말이지.

어느 날 갑자기 목련이 꽃망울을 팡 하고 터트리듯 세상에 첫울음을 터트린 지 7시간 반밖에 안 되었지만, 시인들의 시어로 쓰이기에, 충분한 그런 꽃 중의 꽃이 있어.

반가워 아가
정말 반갑구나.
내가 네 외삼촌이야.

2017년 4월 12일 13시 30분 조카의 탄생 소식을 듣다.

#모이 #딸바보 #아버지 #딸사랑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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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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