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 흡연 때문에 결국 이사를 택했습니다

'공동주택 관리법' 개정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심 목소리 높아

등록 2018.05.03 08:11수정 2018.05.03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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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살고 있는 용산의 한 오피스텔. 1년 전부터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담배냄새 때문에 힘들다는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이 냄새 느껴지시나요?"

김아무개씨(32)의 얼굴은 빨개져 있었다. 집에는 누가 맡아도 바로 코를 찡그릴 만큼 담배냄새가 가득했다. "혹시 집 안에서 담배 피우신 건가요?"라고 묻자, 김씨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밑집에서 올라오는 거예요. 미쳐 버리겠어요!"

김씨는 화장실에 막아둔 비닐봉지를 가리켰다.

                  
 아랫집에서 담배를 피울 때 윗집의 상황
아랫집에서 담배를 피울 때 윗집의 상황정주영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담배 냄새가 올라와요. 더는 못 참겠어요."

김씨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실내화를 벗더니 뒤꿈치로 쿵쿵 거리기 시작했다. 3분 동안 김씨가 쿵쿵거리며 걷기 시작하자, 밑집에서도 질세라 보복 소음이 들려왔다.


"들으셨죠? 아이가 있으니, 담배만 피우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아랫집에 사정을 하는데도 저렇게 이기적일 수 있나요?"

이들의 갈등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층간 흡연을 하는 아랫집의 잘못일까? 층간 소음으로 보복하는 윗집의 잘못일까? 


"매번 밖에 나가 피울 순 없잖아요"

"제가 아랫집에 내려가봐도 괜찮을까요?"
"그러세요."

윗집의 동의를 구하고 아랫집에 내려가 보았다. 그러나 아랫집은 한동안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윗집인 줄 알았어요. 하도 초인종에 시달려서."

방어적으로 문을 열어주던 이 집에서는 정작 별다른 담배 냄새가 나질 않았다.

"윗집에서 담배를 피운하고 고통을 호소하던데…"

그러자, 아랫집에 사는 박아무개씨(35)는 화장실과 베란다에서만 피울 뿐이라고 대답했다.

"하도 윗집에서 난리를 치다보니, 밖에서 나가 피울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잖아요. 저도 제 집이 있는 거고, 제 사생활이 있는건데."

기자가 "윗집에 가 보니 담배 냄새가 충분히 올라오던데요"라고 말을 받아치자, 순간 박씨의 얼굴에 화가 난 표정이 감돌았다.

"지금 윗집 편 드시는건가요?"

예민해 질대로 예민해진 두 집의 층간 다툼을 중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계속 담배를 피울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래층 집주인은 단호했다. 

"당연하죠. 고층에서 어떻게 윗집 눈치 보느라 하루에 여러번 엘리베이터를 타고 담배 피우러 왔다갔다 하겠어요."

아랫집에서 붙여놓은 포스트잇 한장

다시 기자가 윗집을 찾아가 아랫집의 반응을 이야기하자, 김씨는 "(아랫집에서) 그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벌써 층간소음과 층간 흡연으로 1년째 쌍방간 싸움을 하고 있다던 두 집은 감정적으로 틀어진 상태였다.

"이거 한 번 보세요."

아랫집에서 붙여 놓고 갔다던 경고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을 김씨는 보관하고 있었다.

 층간 소음에 대해 경고하는 아랫집 포스트잇.
층간 소음에 대해 경고하는 아랫집 포스트잇.정주영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 데 이 포스트잇이 붙어 있더라고요. 순간 기가 막혀서 눈물이 났어요. 더 기가 막혔던 게 뭔줄 아세요?"

김씨는 잠시 말을 멈췄다.

"포스트잇을 떼고 집에 들어온 순간, 담배 냄새가 여태까지 당했던 것 중에 최악으로 올라왔어요."

그녀는 말을 흐렸다.

"보복 흡연을 한 거죠."

제도적 개선책 있지만 실효성 없어

그렇다면 아랫집 흡연을 강제로 규제할 수 있을까?

지난 2월 10일, '공동주택 관리법' 개정안을 통해 층간 흡연에 대하여 필요시 관리사무소에서 직접 흡연 의심 가구에 들어가서 금연 권고 및 간접흡연 중단 권고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법령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관리사무소마다 해당 개정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가 높다.

"하루에도 층간 소음이나 흡연으로 걸려오는 전화가 열통이 넘습니다."

한 대단지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법령이 시행되었으니 '아랫집이 집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해달라'는 민원을 계속 받았지만, 정작 흡연 현장을 확인받기 위해 문을 열어주는 집은 없을 뿐더러 되려 윗집 편을 든다는 이유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듣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한 경비원은 답답한 듯이 얘길했다.

"을처럼 지내는 저희에게 세대 내에 '권고'를 해보라니요?"

주거문화개선연구소의 차상곤 소장 또한 층간 흡연 문제에 대해 "2~3년 전부터 접수 건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면서도, "정작 세대간의 흡연, 소음 문제를 관리사무소에서 감독하기에는 굉장히 어렵다"며 이번 개정안 실효성의 측면에 의문을 던졌다.

남민준 법무법인 성율 변호사는 법률적으로 짚어 봐도 아랫집 담배 연기를 처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며 "민법상에 상린관계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위법사항이 되어서, 정말 아래층 담배연기로 괴로우면 고소를 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피해자가 층간 흡연 사실을 입증해 내는 것 부터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 답했다. 그러면서 "아랫집 흡연을 위법으로 볼 수는 있지만, 이를 채증 및 처벌하는 규정들이 현실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답변했다. 

 사건이 일어난 오피스텔과 근처 오피스텔에서 흡연자제(아랫집)와 소음 자제(윗집)를 각각 다르게 요구하는 공고문이 붙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리사무소는 실제로 주민을 찾아가는 것이 어려워 공고문을 붙였다고 전했다.
사건이 일어난 오피스텔과 근처 오피스텔에서 흡연자제(아랫집)와 소음 자제(윗집)를 각각 다르게 요구하는 공고문이 붙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리사무소는 실제로 주민을 찾아가는 것이 어려워 공고문을 붙였다고 전했다.정주영

"층간흡연에는 층간소음으로"... 결국 이사를 택했다

한 주가 지나고, 다시 윗집에 김씨의 집을 찾았을 때 그녀는 이사갈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아이 건강 문제도 있고, 아래층에서 내 집이라고 막무가내로 피우는 데 방법이 있나요."

변호사까지 찾아가봤다는 그녀는 되려 자신의 층간 보복 소음이 민사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고 전했다. 그리고 한시간쯤 지나자, 약속한 것처럼 아랫집에서 다시 담배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는 쿵쿵 거리지 않았다.

"곧 집 보러 사람들이 올 거예요."

지금의 "층간 흡연" 상황을 집 구하는 사람에게 알려줄 것인지를 묻자, 그녀는 아랫집에서 올라온 담배 냄새를 조용히 환기시키기만 했다.

"이렇게 담배 연기 올라오는 거 알면 누가 들어와서 살겠어요? 다음 집에서는 서로가 배려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층간 소음 슬리퍼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아랫집에서 층간 소음이 불편하다 할 때 바로 샀죠. 하지만, 제가 배려를 해도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이웃이었어요."

아랫집에서는 어떻게 반응할까? 기자가 한 번 더 초인종을 눌러 상황을 설명하자, "윗집에서 드디어 이사 간다고요? 잘 되었네요"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왜 이렇게 극단적인 현상을 이웃 간에 겪게 되는걸까?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러한 이웃간의 갈등에 대해 "이웃사촌이라는 사회적 신뢰 관계가 무너진 것"으로 오늘날 붕괴된 공동체성에 몰락을 잘 보여주는 사건으로 진단했다.

그러면서 층간 흡연에 대해서는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개인적인 일탈, 해방감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구조가 됐다"며 "그러한  사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흡연 행위를 제재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으로 층간 소음에 대해서는 "주거 형태의 변화로 답을 찾을 수 있는데, 본래 사람과 사람이 거리감이 있어야지 심리적인 효능감이 생긴다"며 "아파트 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러한 거리가 아예 없어졌기 때문에 그만큼 층간 소음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다"고 판단했다.

두 지점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결국 두 이웃간에 해결해야 될 문제다. 김씨가 층간 소음 슬리퍼를 계속 신고, 박씨가 담배를 귀찮더라도 내려가서 폈으면 두 이웃은 그렇게 공존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계약 중간에 이사를 하는 바람에, 300만원 정도 손해봤어요."

김씨는 이사 당일날, 자신의 아랫집을 쳐다보며 말했다.

"물론 아랫집은 제가 사라진 게 더 반갑겠지만요."
#층간소음 #층간흡연 #이웃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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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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