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연
어버이날이라고 평소 안 가던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횟집을 예약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얼 입고 나가냐? 입을 게 마땅치 않은데. 애들 얼굴에 먹칠하게 생겼네!" 하시며 자식 어려운 줄은 알지만 그래도 은근히 봉투를 기대하는 속 내를 감추지 않으십니다. 나무나 정상적인 어버이날 풍경이지요.
하지만 나는 밤새워 일하고 퇴근길에 병원 들르기 바쁩니다. 몇 해 전에는 갑작스럽게 아버지 수술비 마련하느라 아내가 아르바이트까지 해주며 산 오토바이를 팔더니 이제는 병원이 내 집처럼 되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아버지 어머니 아프시면 "의사 선생이 알아서 여간 잘 낫게 해주시지 않겠나?" 걱정이 없었는데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가는 세월까지는 막아주지를 못합니다.
오늘도 역시 퇴근길 병원에 들렀더니 어제보다 눈에 띄게 병세가 호전되어 기분이 좋으신지 농담까지 하십니다. 이른 아침 카네이션 파는 꽃가게가 문을 연 곳이 있었지만, 환자가 무슨 꽃이라 싶어 지나치고 말았지요. 침대에 앉아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간호사 한 분이 등 뒤로 뭔가 감추고 들어섭니다.
"오늘이 무슨 날?"
"응? 무슨 날?"
"짠! 어버이날. 히히"
"……"
"오늘 어버이날이라 병원에서 70세 넘으신 분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려요. 어머니, 떼지 마시고 달고 다니셔요. 예쁘시다."
그렇습니다. 병원이 아들보다 낫습니다. 아들이 할 일을 병원이 대신 해줍니다. 아들은 퇴원하는 날 와서 병원비만 계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걸로 아들의 역할을 다 했다고 믿고 있었던 나 자신이 같잖아 보이는 순간입니다.
-
카네이션.
오거리 슈퍼 앞 등나무 그늘에
카네이션 네 송이가 까르르 하늘을 보며 웃는다.
"할머니들 여기서 뭐 하셔?"
"언제 죽을까 의논하고 있지 뭐해."
넷 중에 분홍색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이 말했다.
"나는 아들이 손녀 시집보내고 오래."
"손녀가 몇 살인데?"
"열두 살?"
"그러면 앞으로 15년? 그 정도야 뭐......"
15년 정도야 우습다는 말에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낸 분홍색 종이 카네이션이 웃다가, 너무 웃다가 틀니가 빠져버렸다. 잠시 후 납작한 가슴에 대롱거리는 손녀가 만들어준 분홍색 종이 카네이션이 서러운 눈물에 젖어 빨간색으로 변하는 걸 보며 못 본 척 슬그머니 등나무 그늘을 돌아 나왔다.
까마귀 한 마리 머리 위에서 까악까악 지나간다.
"너만 슬프냐? 나도 슬프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공유하기
[모이] 어버이날, 내 마음을 적시는 카네이션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