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애의 행방>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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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달콤하지만 내막은 씁쓸한 사랑들 내가 현재 누군가의 애인이거나 배우자일 때, 사실은 그 사람이 이러저러한 사정들로 불가피한 상황에 내몰려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랑 사귀게 되거나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분이 어떠할까. 또는 상대가 나랑 사귀거나 결혼에 골인하는 동안, 나 몰래 기분전환 삼아 속칭 '딴 짓'을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일단 결코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 상대방의 의도가 불온하거나, 그를 압박한 사정이나 상황이 결코 용서할만한 것들이 아니라면 결별도 가능하다. 후자의 경우라면 더더욱 용서할 여지가 줄어든다.
우리는 살다보면 이렇듯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법한 진실을 마주해야할 때가 있다. 내가 누군가와 긴밀한 관계가 되었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나를 '최선'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차선' 내지는 '보험' 정도로 여겨서 일이 여기까지 진행된 것이 들통 날 때 우리의 멘탈은 그때부터 행방을 잃기 시작한다. '꿩 대신 닭'이 되거나 시쳇말로 '호구'가 된 기분은 늘 불쾌하기 마련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연애의 행방>은 바로 이러한 처지에 놓였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이러한 처지를 야기한 커플 4쌍에 관한 이야기이다(중간에 '스키 가족'이라는 챕터가 하나 있는데, 이것만 유일하게 휴머니즘 가족 드라마라는 점에서 다른 챕터들과 결이 다르다). 소설에 등장하는 남녀 8명은 각 커플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각자가 일정 부분 이상 '지분'을 갖고 있다. 등장인물들 중 누군가는 겉으로 달콤해 보이는 다른 커플(들)의 씁쓸한 내막을 알고 있고, 누군가는 대담하게도 자신의 짝을 속여 가며 연기를 펼친다.
형식은 추리소설, 내용은 로맨틱 코미디마치 주식을 보유한 사람들처럼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이 겪는 '연애의 행방'에 대해 어느 정도 권리와 책임을 지니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떻게 그 주식들이 이뤄지고 처분되는지,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또는 자신의 의무를 면피하는지 챕터별로 분할하여 조직한다. 커플 4쌍 중 일부는 주식이 은밀하고 원만하게 거래되어 본래의 달콤한 관계를 계속 가장·유지할 수 있게 되지만, 그 외 일부는 주식 거래에서 탈이 생겨버린 나머지 기존의 관계가 파탄될 지경에까지 이른다. 등장인물들 간의 감추기와 드러내기, 침묵과 폭로가 줄거리 내내 긴장감을 유발한다.
추리소설의 거장답게 (아니면 추리 소설가라는 한계 때문인지) 소설 속의 스토리 역시 전형적으로 추리소설 같은 형식을 띠며 진행된다. 작가는 줄거리의 전체 그림을 한 챕터 한 챕터씩 파편화한다. 소설 속의 각 챕터들은 조각난 퍼즐마냥 전체 그림의 일부만을 제시한다. 그리고 여느 추리소설이 그렇듯이 작가는 조각난 그림들의 순서를 임의대로 뒤섞는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챕터 하나씩 끝마칠 때마다 "뭐지?" "왜지?"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될까?" 등 질문을 연발할 수밖에 없다. 등장인물들의 사랑놀이가 매번 롤러코스터를 탈 때마다 읽는 사람도 가슴이 철렁하며 스릴을 만끽한다.
이 책은 마지막 챕터까지 확인하지 않는 한 각 커플들의 결말을 결코 예단해서는 안 된다. 챕터들이 겹쳐질 때마다 커플들이 겪는 '연애의 행방'은 알 것 같다가도 다시 묘연해진다. 궁금증과 혼란을 야기함으로써 독자를 궁지에 몰아넣고 작품이 끝나갈수록 야금야금 비밀의 근원을 헤쳐 나간다. "연애 소설의 가면을 쓴 미스터리"라는 수식이 붙어도 손색이 없는 이유다(한편 로맨틱 소설의 정석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면 "연애소설의 가면을 쓴 미스터리"라고 힐난하거나 적어도 아쉬워할 만한 이유가 될 것이다).
동계 스포츠 마니아가 쓴 겨울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