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수도회에 내걸린 반야심경, 왜?

[인터뷰]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피정의집 양운기 수사

등록 2018.05.18 07:18수정 2018.05.18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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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피정의집에 걸린 부처님오신날 축하현수막.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피정의집에 걸린 부처님오신날 축하현수막.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반야심경>의 마지막 주문 구절이다. 그런데 이 글귀를 적은 현수막이 가톨릭 수도회에서 내건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부처님오신날을 일주일 정도 앞둔 지난 17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피정의 집 건물 앞에는 현수막 하나가 나붙었다. 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이곳을 지나는 많은 이들에게 종교 간에 평화롭게 지내자는 화합의 의미를 보여주기 위해 내건 것이었다.

특히 현수막의 아래에는 'Buddha's Birthday'라는 문구를 넣어 부처님오신날 축하 의미까지 담았다. 그리고 왼쪽에는 4개의 연등까지 달았다. 부처님이 원했던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차별 없는 종교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지금까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교회나 성당 등에서 아기 부처의 탄신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건 사례는 많았다. 하지만 그 흔한 축하 문구 한 줄 없이 불교 경전의 주문으로만 채워진 이 현수막은 그래서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불교 경전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보통 줄여서 <반야심경>이라 부름)에 등장하는 이 주문은 굳이 번역한다면 '가자 가자 모두 이상향의 세계로 가서 영원한 깨달음을 이루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길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자고 당부하는 의미다.


올해 부처님오신날 봉축표어가 '지혜와 자비로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것을 참작하면, 국내외 정세와 사회 양극화를 화합으로 극복해보자는 의미의 이 현수막이 어쩌면 가장 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다.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던 부처님의 가르침도 아마 이 현수막의 의미와 같지 않았을까.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피정의집에 걸린 부처님오신날 축하현수막. 현수막에는 ‘Buddha’s Birthday’라는 문구를 넣었고, 현수막 왼쪽에는 4개의 연등까지 달았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피정의집에 걸린 부처님오신날 축하현수막. 현수막에는 ‘Buddha’s Birthday’라는 문구를 넣었고, 현수막 왼쪽에는 4개의 연등까지 달았다.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이 현수막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피정의 집 양운기 수사가 직접 기획했고 이달 중순부터 내걸기 시작했다. 이 현수막을 만들게 된 내막은 이렇다.


"피정의 집이 있는 성북동 골짜기가 언제부터인가 카페촌과 식당으로 변모하더니 이제는 계층 간의 거리감을 조성하는 거리로 변모하고 말았어요. 이 멋진 길이 사색에 잠기는 길이 아닌 돈이 넘치는 거리로 바뀐 거죠. 대형사찰과 교회에 수도원까지 있지만, 화합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결국 고안한 것이 현수막이었다. 지나가는 사람 중 단 한 사람이라도 화합을 의미하는 이 현수막을 보고 무엇이든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걸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길상사에 직접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4개의 연등을 얻어 함께 내걸었다.

양운기 수사는 이와 관련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 어떤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배려와 화합에는 종교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이 현수막이 작은 평화를 넘어 '구도의 길', '사색의 길'이 되어 화합으로 가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덧붙였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어떤 곳?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1953년 10월 천주교 서울 제기동 본당에서 창설된 한국인 남자 수도회로 창설자는 방유룡 신부다. 1946년 개성에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창설한 방 신부는 곧바로 남자 수도회를 창설하려 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휴전 후 자신이 사목을 담당하고 있던 제기동 본당에서 5명의 회원과 함께 이 수도회를 창설하고 1956년 12월에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이 수도회의 창설이념은 순교자적 정신의 실천으로 더 완전한 신앙생활, 더 완전한 구원에의 참여, 자아의 성화(聖化)와 이웃의 성화에 노력하며 하느님의 사업에 동참한다는 데 있다. 창설 이듬해인 1954년 5월, 명동성당의 부속건물을 빌려 임시 수도원으로 사용하다 다음 해 7월 서울 성북구 성북동 현 위치에 본원을 건립하고 입주했다. 피정의 집은 지친 영혼을 달래는 피정(避靜·가톨릭 신자들의 수련 활동)을 행하는 부속기관이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걸린 부처님오신날 축하현수막은 5월 중순부터 내걸었고, 이달말까지 게시될 에정이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걸린 부처님오신날 축하현수막은 5월 중순부터 내걸었고, 이달말까지 게시될 에정이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피정의집 #부처님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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