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5/8) 화면 갈무리
민주언론시민연합
'데일리NK'는 북한 간부 강 모 씨를 "일제강점기 당시 반일부녀회를 조직하는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다고 북한이 주장하는 강반석의 아버지 강돈욱의 후손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TV조선 <보도본부핫라인>(5/8)은 이를 가계도 그림과 함께 똑같이 보도했습니다. 엄성섭 앵커는 흥분한 목소리로 "(강 모 대좌가)계급은 대령이니까 별보다는 낮으니까 그런데 김일성 일가하고 지금 관련돼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강반석이라는 사람이 북한에서 엄청나게 칭송하고 있는 대상 아니에요?"라고 외쳤고, 윤우리 기자는 "강반석 같은 경우에는 김형직과 결혼을 해서 대동강 하류 망명대에서 1912년에 김일성을 낳았는데 북한은 강반석이 일제강점기에 반일 부녀회를 조직하는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때 지난 4월 조선중앙TV의 '강반석 칭송 방송'까지 보여줬습니다.
TV조선이 타 매체, 심지어는 세 번에 걸쳐 전달된 전언을 보도하고자 했다면 북한 간부 강 모 씨의 도주가 사실인지 먼저 검증부터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TV조선은 스스로 밝히지도 않은 최초 보도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쓰면서 확인되지도 않은 '북한 도주자'의 가계도를 부각했습니다. 시청자에 대한 기만이자 굉장히 선정적인 보도 태도입니다.
'카더라'에서 '카더라'를 뽑아내는 TV조선의 '마법'TV조선의 이러한 '북한 카더라'는 결국 허위사실, 명예훼손에 가까운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데일리NK'는 강 모 대좌가 "달러를 찍는 활자판과 상당한 외화를 소지한 채" 도주했다고 보도했는데요. TV조선은 이 대목에도 집중하면서 갑자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론했습니다. 결론은 '노무현 정부 정보기관이 북한의 슈퍼노트(정밀 위조지폐) 존재를 알고도 노 전 대통령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TV조선이 여기서 언급한 슈퍼노트 자체가 또 다른 '카더라'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강 모 대좌의 '가계도'에 천착했던 TV조선은 곧바로 '데일리NK'가 보도한 '위조달러 찍는 활자판 소지 도주'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윤우리 기자는 "강 대좌가 도주 당시에 달러를 찍는 활자판과 상당량의 외화를 소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보도 내용을 전하자 엄성섭 앵커는 재차 흥분하며 "달러 찍는 활자판이라면 지금 위조지폐, 슈퍼노트 만드는 거? 100달러짜리"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자 윤 기자는 "예. 맞습니다. 그것까지 들고, 도주를 했다는 것"이라 확인했는데요. 놀랍게도 TV조선이 인용한 텔레그래프, 텔레그래프가 인용한 데일리NK 보도 어디에도 강 모 대좌가 '슈퍼노트'를 들고 도주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다만 '위조지폐 활자판'을 들고 도주했다는 것인데, 단순한 '위조지폐 활자판'과 '슈퍼노트'는 엄연히 다릅니다. 슈퍼노트의 경우 비용만 수 천 억원이 소요되는 조폐 공사급 제작 라인을 구비해야 제작이 가능한 '초정밀 위조지폐'로서, 일반적인 위조지폐 범죄조직은 만들기 어렵습니다. TV조선이 '탈북 카더라'를 더 과장하기 위해 '슈퍼노트'라는 또 다른 '카더라'를 만든 겁니다. '카더라'에서 '카더라'를 뽑아내는 TV조선의 마법입니다.
'노 전 대통령만 몰랐던 슈퍼노트'? TV조선만 모르는 '언론의 품격'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충격적 주장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이어졌습니다. 패널로 나온 이도운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TV조선 기자들이 거론한 '슈퍼노트 소지 도주'를 사실로 전제한 채 "미국은 이미 2000년도에 한번북한 슈퍼노트 때문에 한번 홍역을 치른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게 나오면 아마 또 핵 문제와는 별개로 이 자체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 진단했습니다. 확인되지도 않은 '슈퍼노트 소지 도주'를 근거로 지금 진행 중인 북미회담까지 연결한 겁니다.
이어서 이 씨는 "이 슈퍼노트를 북한이 발행해서 유통하고 있다는 것을 제일 먼저 안 게 우리나라 정부기관이고. 이거를 미국에 알려준 것도 우리나라입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거는 2005년 경주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는데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한테 북한이 위조지폐 발행한다고 막 비판을 하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증거 있냐고 하니까 부시 대통령이 '증거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이) '어디 있냐'고 했더니 '당신들이 알려주지 않았냐'. 그 정보를 미국에는 알려줬는데 노무현 대통령한테 보고는 안 했던 거예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놀란 엄성섭 앵커가 "진짜입니까?"라고 반문하자 이 씨는 "진짜죠"라고 확언했고 이 주제 대담은 마무리됐습니다.
이 대목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일단 TV조선, 그리고 이도운 씨는 2005년 한미 정상회담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나눴다는 대화에 대해 근거를 전혀 밝히지 않았습니다. 당시 관련 보도를 찾아봐도 한미 정상이 경주 회담에서 북한 위조지폐 문제를 논의했으나 결렬됐다는 소식만이 있을 뿐, 해당 대화는 찾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이도운 씨 본인이 2005년 당시 작성한 한미 정상회담 관련 보도들에도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다만 딱 1건의 보도에서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바로 이도운 씨가 지난해 8월, 문화일보에 게재한 칼럼 <문재인 정권 내부의 敵(적)들>(2017.8.2. https://bit.ly/2Ioijhk )입니다.
이 칼럼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비판하고 문재인 청와대 참모들이 "학생운동 시절 민족해방(NL) 계열"이라 지적하면서 "2005년 11월 17일 경주에서 한·미 정상회담" 일화를 거론했습니다. 내용은 똑같고, 역시 어디서 그런 대화를 들었는지 출처는 없습니다. 요컨대 이도운 씨 본인이 이미 근거 없이 내놨던 주장을, 이번 북한 간부 도주 사건을 계기로 다시 꺼내든 겁니다. TV조선과 이도운 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자 허위사실이 될 수 있는 이 주장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카더라'에서 시작해 '노무현'으로 끝맺는 보도, 불필요하고 유해하다TV조선은 타 매체가 보도한 '북한 간부 도주'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원래 출처를 밝히지 않았고, 원 출처인 보도 매체보다 훨씬 더 내용을 과장하며 또 다른 '카더라'를 양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환됐고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확인되지 않은 '북한 카더라'를 방송한 시점과 맥락입니다. 5월 8일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두 번째 방중을 결행하면서 북미회담 및 한반도 평화체제 기류에 또 한 가지 분석지점이 발생한 시기입니다. 실제로 TV조선은 '김정은 방중'을 다루다가 갑자기 이 사안을 꺼내들었고 '카더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런 태도는 검증되지 않은 북한 발 선정적 이슈로 시청자를 현혹시키는 것으로서 긴박한 한반도 정세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TV조선이 늘 '대북관'으로 문제 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굳이 거론하며 이도운 씨의 일방적인 주장을 '사실'로 확인해준 부분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관계 기관의 중징계가 불가피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 민언련 종편 모니터 보고서는 패널 호칭을 처음에만 직책으로, 이후에는 ○○○ 씨로 통일했습니다. 이 기사는 시민 여러분들의 제보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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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슈라면 '3중 카더라'도 불사하겠다는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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