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지뇨 마쿨(Cousino Machul)' 입구에서이 와이너리의 입구에 들어서면 포도나무들이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져있다.
송승희
이 푸르른 들판의 포도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다함께 파도처럼 너울거렸다. 그리고 햇볕이 내리쬐면 다함께 건강한 잎사귀들을 흔들며 반짝였다. 친구 다니의 차는 지금 그 사이에 난 길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벌어진 입도 다물줄 몰랐다. 다만 문득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사로잡혀 있던 감상을 휴대폰 메모에 급하게 옮겨 적었을 뿐이다. 그러다 감히 고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개사하고 말았다. 개사라기 보다는 코미디에 가깝긴 하지만 나름 그때의 감흥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다니의 고물차는 쿨럭쿨럭 기침이라도 하듯 먼지바람을 한바탕 일으키고 멈춰섰다. 현지 와인에 공부하는 기회도 가질 겸 내 생일도 축하할 겸, 겸사겸사해서 도착한 이곳은 칠레 최고 와이너리 중 하나인 '코지뇨 마쿨(Cousiño Macul)'. 다니는 와인을 별로 즐기지는 않지만 오늘 특별한 날을 맞은 나를 위해 직접 운전사를 자청했다. 칠레는 세계 최대의 와인 생산국의 하나지만 그녀처럼 현지인들 중에 와인을 잘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생각해보면 한국인이라고 누구나 소주, 막걸리를 다 좋아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나는 실제로 소주를 너무 싫어해서 내 소주 주량은 겨우 '반잔'이다).
리셉션에 방문자 접수를 하고 방문자 카드를 건네받았다.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붐비는 것 같았다. 투어 비용을 이미 지불한 우리는 인파를 피해 가쪽에 서서 가이드가 오기를 기다렸다. 가만히 귀를 귀울이니 스페인어와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나 독일어 같은 유럽 계통의 다양한 언어도 들리는 듯 하다. 이곳 와인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있다더니 와이너리 투어 상품도 그에 맞먹는 듯 하다.
얼마 뒤, 3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똑똑한 가이드 아가씨가 우리에게 당첨되었다. 그녀는 '잉글리쉬, 잉글리쉬!'를 연신 외치며 그녀 담당 방문자들을 한데 모았다.
우리는 둥글게 원을 만들어 간단히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휴가 중인 미국인 모자, 교환학생이라는 아일랜드 출신 훈남 삼인방, 영어도 못하면서 여기에 낀 의문의 브라질에서 온 한 커플 그리고 칠레 & 싸우스 꼬레아의 독특한 조합인 우리도 모두 이에 합세했다. 가이드 언니 포함 모두가 궁금해하는 바람에 우리는 1분짜리 인간극장을 상영하듯 우리의 우정에 대한 '썰'을 조금 풀어주었다(한두번 겪은 일이 아니라 이제 설명할 때 쓰는 일정한 레파토리가 있을 정도다). 그제야 모두들 만족스런 표정으로 견학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