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으러 야학 오는 게 현실인 사람들

'밥 먹을 권리'를 위해... 노들장애인야학이 6월 9일 후원 마당을 엽니다

등록 2018.06.03 16:17수정 2018.06.0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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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씨, 혹시 상암 근처에 휠체어 10대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있을까요?"

모든 것은 한 통의 메시지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저와 같이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자원활동 교사를 하고 있는 한 선생님께서 학생들과 함께 상암 문화비축기지로 현장학습을 간다며 식당 추천을 부탁하셨습니다. 마침 제가 다니는 회사가 상암에 있어 제게 추천을 해달라고 하신 겁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요? 잠시만요. 제가 조금 더 생각해볼게요. 혹시 어떤 메뉴를 찾고 계세요?"
"메뉴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요. 메뉴까지 정하기에는 배부른 소리라..."

일단 답변을 보내놓고 한참을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즐겨가는 식당들은 하나 같이 문턱이 높아 휠체어가 들어가기 어렵더군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실은 저는 휠체어를 타지 않는 비장애인이고 그래서인지 휠체어가 들어갈 식당을 눈여겨보지 않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배부른 소리'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회사 일을 끝마치고 상암 주변 식당가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20분쯤 빙글빙글 여러 골목을 돌아다녔습니다. 아마 지대가 평평하지 않은 탓이겠지만 대체로 식당 입구에는 휠체어가 진입하기 어려운 계단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계단 없는 식당에는 휠체어가 들어가기에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문이 있었어요. 가까스로 '계단도 없고' '문도 넓은' 식당을 발견하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제가 들어갔을 때는 벌써 마감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혹시 이 식당에 휠체어가 한 열 대 정도 들어와서 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식당 사장님인 것 같은 남성 분은 잠시 고민을 하시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와! 마침내 식당을 찾았습니다! 기뻐하려던 찰나.


"근데 언제 와요? 사람이 많아서 점심때는 안 돼요."

노들야학이 후원 주점을 엽니다


 매주 월, 화, 목, 금요일 저녁마다 진행되고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의 무상급식 모습. 야학 학생들과 활동지원사가 급식을 받고 있다.
매주 월, 화, 목, 금요일 저녁마다 진행되고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의 무상급식 모습. 야학 학생들과 활동지원사가 급식을 받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매주 월, 화, 목, 금요일 저녁마다 진행되고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의 무상급식 모습. 야학 학생들이 밥을 먹고 있다.
매주 월, 화, 목, 금요일 저녁마다 진행되고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의 무상급식 모습. 야학 학생들이 밥을 먹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저녁 드셨어요?"

안부차 묻는 이 흔하디흔한 질문이 누군가에겐 답하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이 번화한 동네에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은 거의 없었다. (중략) 학생들은 김밥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밥 먹듯이' 밥을 굶을 수밖에 없었다."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중에서)

서울 종로에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자원활동 교사를 한 지도 벌써 반년이 넘어갑니다. 퇴근을 하고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야학으로 향합니다. 저는 '청솔2반'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퇴근을 일찍 한 날에는, 학생들과 같이 노들야학에서 급식을 먹기도 합니다.

외식을 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노들야학에서는 2014년부터 급식을 제공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3000원으로 돈을 받았지만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2016년 '무상 급식'을 진행합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찾아 매끼 같은 식사를 하는 것보다 매일 다양한 반찬이 나오는 급식을 하는 편이 (당연히) 좋습니다. 학생들은 저녁밥을 다 같이 먹고 오후 9시까지 수업을 합니다. "밥을 먹으러 야학에 온다"며 웃는 학생들을 보면서, 급식을 먹기 위해 학교에 다니던 제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매끼 무상 급식을 제공한다는 게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달 평균 쌀 200kg과 김치 100kg이 들어가는 노들야학의 급식비용은 사실 야학의 큰 숙제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밥을 먹고 공부할 수 있을까요.

고민 끝에 오는 6월 9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급식 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 마당을 엽니다. 이날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 1층 주차장에서 음식과 책을 팔 계획이에요. 물론 아이와 함께 오는 가족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어린이와 부모님들을 위한 놀이방도 운영할 예정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께서 "이 일상을 가꾸는 일에,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후원한 밥 한 끼로, 노들야학은 계속 함께 먹고 공부하며 세상을 바꿔나갈 생각입니다."

 2018년 노들장애인야학 후원 마당 포스터.
2018년 노들장애인야학 후원 마당 포스터.노들장애인야학

#노들장애인야학 #후원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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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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