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도로 아스팔트가 아니라 육면체 돌을 촘촘히 박아넣은 형태다. 이런 도로 역시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박기철
딱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골목길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다. 사람들이 붐비는 유명한 관광지 근처의 광장이나 큰 도로와 달리 조용한 골목길은 피렌체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 준다. 그렇게 걷다 보면 문득 골목길 어귀에서 괜찮은 식당이나 카페를 만날 수도 있다. 블로그에 소개되어 북적이는 유명 맛집도 좋겠지만, 이런 곳에서 여유 있게 즐기는 식사는 온종일 걸어 다녀야 하는 피렌체 여행에서 괜찮은 쉼표가 되어 줄 것이다.
이런 골목길 양옆은 모두 좁고 높은 주택들이 빽빽하게 이어져 있다. 보통 수백 년은 된 듯한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도 좋지만 이렇게 작은 주택들도 조금만 알고 보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서민들의 주택, 스키에라형 주택피렌체 지도를 보면 모든 길에는 이름이 붙어 있다. 길을 나타내는 말로 '비아(via)'와 '보르고(borgo)'가 있다. 이 단어를 붙여 '비아 세르비(Via dei Servi, 세르비 거리)'처럼 거리 이름을 표현한다. 그런데 비아와 보르고는 그 유래가 조금 다르다. 비아는 옛날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세웠던 성벽 안에 있었던 길을 지칭한다. 반면 보르고는 성벽 밖에 있는 외곽 지역을 뜻하는 말이었다. 과거 보르고 지역에는 빈민들과 장애인, 매춘부 등 사회 주류에 포함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이런 비아와 보르고를 따라 촘촘히 들어선 일반 서민 주택은 주로 스키에라형 주택이라고 부른다. 스키에라형 주택들은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다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중반에 대량으로 건설되었다. 이 당시 각 수도원들은 도시 곳곳에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부동산을 주택지로 조성하여 공급했기 때문이다. 스키에라형 주택은 19세기까지 피렌체의 대표적인 주거형태가 되었다.
수도원들이 개발한 신규 주거 지역의 일부는 도심 외곽에 형성되었다. 부유층들이 거대한 저택(팔라초)을 짓고자 도심의 하층민 거주 지역을 매입하면서 밀려난 사람들이 여기로 모여들기도 했다.
스키에라형 주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이웃집과 벽을 공유하는 것이다. 스키에라(schiera)는 '대형을 이룬 편대'라는 뜻인데 수많은 집들이 벽을 붙이고 길게 늘어선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벽을 공유하면서 촘촘하게 붙어 있기 때문에 연립주택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스키에라형 주택은 단독주택이다.
스키에라형 주택은 보통 3층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심에서 만나는 상당수의 스키에라형 주택은 1층이 상점이고 2층부터는 주거 구역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건물의 1층은 상품을 진열하는 가판대를 설치하기 위해 커다란 개구부가 뚫려 있다. 이 개구부 옆에는 주거구역인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 입구가 있다. 이런 형식을 '보테가(bottega, 상점이라는 뜻)' 형식이라고 한다.
보테가 형식과 달리 1층부터 위층까지 모두 주거구역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1층에 개구부가 없고 현관문만 있다. 이런 형식을 '아트리오(atrio, 현관/로비라는 뜻)' 형식이라고 한다.
보테가 형식은 상점이기 때문에 주로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에 위치한다. 일종의 주상복합 주택이다. 반면 아트리오 형식은 유동인구가 적고 한적한 동네에서 많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