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최북단' 강원도 고성 해변가엔 철조망이 길게 늘어서 있다.
김성욱
"아 그럼, 대진에서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지. 나도 손님만 아니었으면 밑에 거진에서 끝내고 여기까진 안 올라와. 여그 봐. 터미널에 아무것도 없잖어."늦은 저녁 강원도 고성 대진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린 승객은 혼자였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는 단 두 석만 빼고 군인으로 꽉 찼다. 모두 앞 정거장인 인제나 원통에서 우루루 하차하고 난 뒤였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없어. 금강산 끊기고 이까지 누가 오갔어."신기하다고 위아래를 훑던 기사는 차고지로 가야 한다며 그만 내리라고 했다. 말이 터미널이지 버스는 물론 창구 하나 없이 휑했다. 대진터미널은 동해권 최북단 시외버스터미널이다.
시내버스도 벌써 일찍 다 끊겼을 거란 버스 기사의 말에 하는 수 없이 차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인적 드문 도로의 이름은 '금강산로'. '통일전망대 13km',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2.7km', 'DMZ박물관 12.1km'라고 쓰인 팻말들만 드문드문 서있다. 적막 속에 몇 분이나 걸었을까.
다듬다 만 고구마줄기 몇 가닥을 손에 쥔 85세 할머니를 만났다. 통성명을 몇번 주고 받으니 금세 경계가 풀렸다.
"요즘 젊은이들 고생이 많지. 근데 여긴 더 문제가 많소. 젊은이들이 없어. 봐봐, 다 나 같은 늙은이들 뿐이지." 고성에서 처음 만난 그 할머니는 이북 출신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6.25 다음 해인 1951년, 18살 나이에 이곳으로 피란 왔다.
"여기서 고향은 걸어서 한 나절이면 들어갈 수 있어. 그짝서도 나는 고성 사람이었으니까. 이짝으론 '물도'로 해서, 그러니까 쩌그 물길 따라 동해안으로 내려왔지. 통일? 쓸데 없는 소리 마소. 이제 통일 되면 뭘 하겄소? 거기 있는 사람들 다 죽었을 텐데. 진작에 못 들어간 게 한이지, 한."
"여기는 무조건 한나라당이었어, 근데 요즘 보면..."북미정상회담과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남녘 땅 최북단 접경지대인 강원도 고성을 지난 5일과 6일 찾았다. 10년 전인 2008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전까지 고성은 금강산 관광의 남쪽 관문이었다.
대진의 금강산로에서 만났던 그 할머니는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대화하고 왔다갔다 하면 좋지, 그래야 여기도 활발하게 경제가 살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도 "금강산(관광)도 왔다리 갔다리 하는 거 보소, 끝까지 가봐야 안다"고 거듭 말했다.
할머니는 그러면서 보수 텃밭으로만 불리던 강원도의 분위기가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 강원도는 원래 무조건 한나라당이야. 아직까지 여긴 낙후 지역이라고. 도대체 깨닫질 못했어 사람들이. 그래도 요즘 보면 옛날에는 한나라당 말고는 오르내림도 없었는데, 조금은 깨쳐가는 것 같더라고. 그 전보담은 머리가 많이들 트인 거지. 왜냐고? 아유 박근혜가 그렇게 했잖소."'전방지대'인 강원도는 전통적인 보수 텃밭이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아슬아슬하게 당선되긴 했지만 후보의 개인기였다는 평가가 더 타당하다. 강원도의회는 자유한국당 37석, 더불어민주당 6석으로 여전히 보수가 압도적이고, 강원도내 시장·군수 등 기초단체장 18석 중 무려 15석이 한국당이다.
"금강산 끊긴 지 벌써 10년... 그때가 좋았지, 지금은 다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