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이 '대법원장의 직접 고발' 반대하는 이유 3가지

"수사 필요성 모두 공감, 검찰에 강한 메시지 던진 것"

등록 2018.06.12 16:43수정 2018.06.1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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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상 법원행정처장과 배석한 각 지방법원 판사등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회의실에서 전국법원장 간담회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과 배석한 각 지방법원 판사등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회의실에서 전국법원장 간담회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이희훈

전국 각급 법원 53개를 대표하는 판사 115명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재판거래' 의혹에 '형사조치' 의견을 의결했다. 그러나 12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뿐 아니라 법원의 대다수 내부 의견은 김명수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가 직접 고발 주체로 나서는 데 우려를 내비쳤다.

이미 다수의 시민사회단체에서 고발해 검찰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판사들은 왜 사법부의 적극적 조치에 반대하는 걸까.

[첫번째 이유] "아직 개연성 충분하지 않다"

판사 블랙리스트에서 시작된 사건은 법원 내부 조사 결과 '사법농단' 의혹으로 이어졌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아래 특조단)은 지난달 25일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의 관심 사건 재판 결과를 사법부 숙원 사업과 맞바꾸려 한 정황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특조단은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관련자들에게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난이 쇄도하자 특조단은 "충분히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입장을 바꿨으나, 당시 관계자들은 대법원장이 직접 형사조치에 나서는 것만큼은 부정적이었다. 전국 법원에서 열린 판사회의 중 현 대법원의 수사의뢰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곳도 3곳에 불과했다. 대법원장의 형사조치로 사법농단 수사가 이뤄질 경우,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지난달 28일 특조단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사건에 있어 판사가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아주 범죄혐의가 뚜렷한 개연성이 충분히 확보된 경우가 아니면 행정처가 직접 나서서 하기엔 행정처 입장에서도 부담이 된다"고 설명했다.

전국법원장 35명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특조단이 문건 98개를 공개하고 나서도 판단이 바뀌지 않은 것이다. 지난 7일 이들은 전국법원장회의를 통해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자들에 대해 형사 조치를 하지 않기로 한 특별조사단 결론을 존중하고 사법부에서 고발, 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결의안을 발표했다.


더 나아가 양승태 재판거래 의혹이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두번째 이유] "향후 판결의 신뢰도 떨어질 수 있어"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민과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민과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이희훈

현 대법원장이 형사조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경우, 양승태 재판거래에 이어 다시 재판 신뢰성에 말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법관대표회의에서도 이 부분을 두고 첨예하게 논쟁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관대표회의에 참석했던 한 판사는 "수사촉구와 형사절차 필요라는 두 가지 안 중 '형사절차 필요'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라며 "대법원장이 직접 고발해도 재판 독립의 원칙상 실제 재판에 영향을 받진 않겠지만, 만일 다시 대법원장이 판결에 관여했다는 평가를 받으면 그 자체로도 좋지 않다. 어떤 결론이 나와도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회의가 판사들을 대표하는 곳인데 나중에 영장을 발부하거나 재판하는 판사가 수사의뢰를 했던 판사일 수 있다"라며 "만일 그 사람이 유죄판결을 내린다면 과연 독립적인 판결이라는 해석이 나올지 의문이다. 향후 재판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 수사 '촉구'가 아닌 '필요'로 의결하는 데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법관회의 측은 "이미 시민단체에 의한 고소·고발이 충분히 이뤄졌기에 법원이 또는 대법원장이 직접 고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에는 양 전 대법원장을 고발한 사건이 14건 배당돼 있는 상태다.

[세번째 이유] "이미 검찰에 강한 메시지 던졌다"

법원 내 수사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생겼고, 검찰에 충분히 의사 표시를 했으니 수사를 진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는 "이미 수사는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법관대표회의까지 검찰에 수사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며 "순화해서 표현한 것일 뿐 사실상 강한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생각보다 법원과 검찰의 특수 관계, 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전 대법원장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사실 대법원장 고발은 어떻게 보면 방법론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판사 또한 "수사 개시는 검찰의 권한이다. 검찰이 삼권분립에 따라 신중하게 가는 건 좋지만, 법원 입장에선 검찰에 이번 사건 수사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게 아니라는 선언만 해주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양승태 #김명수 #법원행정처 #사법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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