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지, 글을 써서 무엇이 된다는 결과물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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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씩 사람들과 나누는 글쓰기 수업은 무미건조했던 일상에 색다른 색채감을 불어넣었다. 그 무렵 40대 초반이었던 나는 너무 늦지 않았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버둥거릴 때였다.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는 늙었고, 무엇인가를 포기하기에는 젊은 나이였다. 늦었다고도 빠르다고도 할 수 없는 그 지점에서 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강의실에 모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의 조급함이 조금씩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꿈에 도전할 나이란 따로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 애매모호한 나이였지만 새로운 출발점을 찍기에는 충분했다. 글을 쓴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지, 글을 써서 무엇이 된다는 결과물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계속 글을 쓰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괜찮았다. 동기부여를 위해 공모전에 내볼 테지만, 떨어진다 해도 상관없었다. 나의 부족함을 알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작가의 길로 인도하지 못할망정 성숙한 인간됨을 마련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시간들이 시시한 방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점 하나를 제대로 찍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내가 되고 싶었다.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한두 차례 후속 모임이 이루어졌지만, 선생님이 빠진 모임은 흐지부지 되기 마련이었다. 이후로 나는 혼자서 계속 글쓰기를 이어나갔다. 나에게는 아직 세상을 변화시킬 혁명적 관점도, 언어로부터 억압받는 세상을 구현해낼 재간도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책상 앞에서 엉덩이를 단련시켜야 할 숙제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원래 특별한 용무가 없으면 메일함을 열어보지 않는다. 그날 내 메일함에 접속하려던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보내온 메일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만은 생생하다. 메일의 제목부터가 파격적이었다. 제가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2015년 계간 <시와 소금>의 신인문학상을 받았다는 글과 함께 당선작 시 몇 편이 함께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를 읽어 내려갔다. 몇 년 사이 그의 눈부신 문학적 성장은 상식의 범위를 초월한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제자리걸음 중인데, 그가 이뤄낸 문학적 발전이 부럽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시인의 꿈을 일구어낸 그의 시간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명지산 자락 아래 밤마다 불 밝히며 시심을 찾아 홀로 지새웠을 시간들. 그가 한 장 한 장 쌓아올린 시간의 벽돌은 얼마나 될까. 그에게 축하의 답장을 보냈다.
그가 던진 돌직구 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