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검찰이 발부한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남재준,이병호 (왼쪽부터), 이병기 전 국정원장 (지난 11월13일 검찰 출석 당시 사진)
최윤석
[기사 보강 : 15일 오후 2시 18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매달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상납한 전직 국정원장 3명에게 모두 실형이 선고됐다. 그러나 세금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국고손실 혐의만 인정했을 뿐,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는 혐의는 전부 무죄로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15일 오전 열린 선고공판에서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3년6개월, 징역 3년6개월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에게는 국고손실 방조했다며 징역 3년형을 내렸다.
앞서 검찰은 이들이 재임 시절 각각 6억(남재준)·8억(이병기)·21억(이병호)씩 총 35억 원을 박 전 대통령에게 건넸다며 특가법상 국고 손실 및 뇌물 공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대테러 활동' 등 고도의 기밀성을 요하는 데 쓰도록 용도가 엄격히 제한된 특활비를 대통령에게 뇌물로 공여한 죄질이 좋지 않다며 징역 5년~7년형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이 중 국고손실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성 재판장은 "대통령 지시만으로 자금 지급이 적절한지 최소한의 검토도 거치지 않고 국민의 세금을 함부로 사용해 지속적으로 국고를 손실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무엇보다 엄격해야 할 예산 집행을 흔들 뿐 아니라 예산을 국가 안전 보장에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성까지 초래했다"라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국정원장을 회계관계직원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장이 이에 해당 해야만 국고손실 혐의를 적용할 수 있어, 재판의 쟁점 중 하나였다. 재판부는 "국가회계법, 국정원법 등 관계 법령과 국정원 내부 예산사무처리규정을 검토한 결과 국정원장은 예산과 결산에 실질적이고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위치라고 판단된다"라며 "국정원장 몫 특수활동비는 보안 유지를 이유로 증빙 자료 제출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원장의 직접적인 책임과 권한 아래 있다"라고 봤다.
"통상 공무원 뇌물 사건과 다르다" 하지만 핵심 쟁점이었던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뇌물 공여' 혐의는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먼저 박 전 대통령이 요구해 특활비 상납이 시작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성 재판장은 "통상 상급-하급 공무원간 금품수수가 뇌물로 인정되는 경우는 특정한 이해관계를 위해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자발적으로 금품을 지급하고 상급자가 이를 알면서 수수하는 경우"라면서 "이 사건은 이러한 통상 공무원 뇌물 공여 사건과는 다르게 보인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장 임명에 대한 보답과 앞으로의 직무 수행, 국정원 현안에 대한 각종 편의 제공을 기대할 목적으로 돈을 건넸다는 검찰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고위공무원이 임명 보답으로 대통령에게 자신이 관리하는 국고를 지급했다는 것 그 자체로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라면서 "국정원 댓글사건 등 일부 현안이 있었지만 이는 특활비를 지급한 시점부터 발생한 현안이 아니었고 국정원만의 현안이라기보다 대통령 자신이나 정권, 정부 자체의 중요 현안이었다"라고 밝혔다.
또 장기간 돈을 상납했음에도 편의를 제공 받았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재임 기간 중 청와대와 마찰을 빚은 사례도 엿보이는 점 등을 거론하며 "편의 제공은 현실적인 뇌물 공여 동기라고 보기엔 막연하다"라고 했다.
같은 이유에서 이병호 전 원장이 이원종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준 특활비 1억5천만 원도 뇌물로 인정되지 않았다. '비서실 업무 경비를 지원하라'라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돈을 주고 받았을 뿐 둘 사이에 특별한 대가성이 없다는 취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