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대답 없는 김명수 대법원장(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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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특별조사단이 발표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시도하고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한 뒷조사와 징계 등을 추진한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담화에서 밝힌 주요 내용은 사법부를 대표한 사과, 사법농단에 관여한 14명의 법관에 대한 징계회부와 직무배제,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에 대한 영구보전 지시,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하여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 제공과 수사 협조, 근본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사법개혁 추진 등으로 요약된다.
그동안 고위법관들이 사법부 신뢰 추락 등을 이유로 수사를 반대하고,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에서조차 사법농단 사태 관련자에 대한 수사 의뢰는 물론 수사협조의 의사조차 표명하지 않았던 점에 비추어 볼 때, 김 대법원장이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수사에 대한 협조 의지를 명시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조치로 평가된다. 또한 재판이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외관을 꾸며내는 행위만으로도 사법부의 존립 근거인 국민의 재판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이에 따라 관여 법관들을 징계에 회부하고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자료에 대한 영구 보전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사법농단에 대한 진상규명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청와대 권력과의 재판거래와 법관들에 대한 사찰로 요약되는 이번 사법농단 사태가 삼권분립이라는 근대 민주주의국가의 기본질서와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근본에서부터 부정한 헌정 유린 사태라는 점을 감안할 때, 김 대법원장의 발표는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절충적이며 한편으로는 권위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 발표의 아쉬운점 다섯가지첫째, 발표 방식에서부터 매우 권위적이다.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을 직접 대면하고 사과한 것이 아니라 담화문을 법원 전산망에 올려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질문과 문제 제기를 허용치 않는 것으로, 권위주의 정부에서 국민을 계도하거나 일방적으로 홍보할 때 즐겨 사용하던 방식이다. 사법부가 여전히 국민을 권위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사법부를 대표하여 사과하기는 하였으나, 사과의 대상이 무엇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다.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접하고 국민 여러분이 느꼈을 충격과 분노에 대해 사과한다라고만 되어 있다. 문제가 되는 위반행위가 무엇인지 언급하지 않은 채 만연히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게 되어 죄송하다는 권력자들의 표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셋째, 법관들이 재판의 진행과 결론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개인의 신념을 강조함으로써 은연중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이나 재판 거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에 영향을 받는 법관의 재판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전제하고 있다. 재판 외관의 공정성 말고 재판 내용상으로는 일말의 하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인 협상추진 전략' 제목의 문건에서 "국가적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건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 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하고 "그동안 사법부가 VIP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에서 최대한 협조해온 (재판)사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음에도 재판 내용상 하자를 부인하는 논리모순을 스스로 범하고 있는 것이다. 조직 보호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넷째, 미공개 문건을 포함하여 모든 인적·물적 자료 제공 등 수사 협조 의사를 밝히고 있음에도,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섣불리 고발이나 수사 의뢰와 같은 조치를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물론 수사 협조 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미 피해자들이 제기한 고발에 따라 검찰의 수사는 개시될 것이다. 하지만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고발이나 수사 의뢰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사법부 스스로 법의 평등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어서 여전히 법관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위법행위에 대한 혐의가 있으면 그것이 누구이든 수사대상이 되고 공무원은 위법행위를 발견하면 고발해야 할 의무를 진다. 이것이 형사소송원칙이다. 법관은 법정에서 판단할 때의 자격을 의미할 뿐이다. 13명의 법관에 대한 징계회부는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가? 범죄혐의자에 대한 수사 의뢰는 공무원인 대법원장의 의무이다. 공무원의 고발 의무를 부인해버린 셈이다.
다섯째, 재판거래에 대한 진상이 드러나게 될 경우 그 재판으로 인해 피해를 본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구제 방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는 재판 개입이나 재판 거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에 영향을 받는 법관의 재판은 있을 수 없다는 김 대법원장의 예단과 연계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영향을 받은 재판이 없으니 피해자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피해자 구제를 언급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재판거래의 대상이 된 판결들 중에는 국가폭력 피해사건, 노사관계를 좌우할 주요 노동사건에 대한 판결들이 대다수이다. 이들 판결들을 그대로 둔다면 두고두고 국가폭력 피해 사건과 노동사건들에서 판결의 기준이 되어 정의에 반하는 판결을 강제하게 될 것이다. 피해자 구제방안에 대한 언급이 반드시 필요했던 이유다.
이마저도 반기를 든 대법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