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직업병' 직접 챙기는 미국... 한국은?

[이건의 미국소방 평론 19] 소방관의 손은 국가가 잡아줘야 한다

등록 2018.06.21 17:13수정 2018.06.2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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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설립된 미 의회 소방단체(Congressional Fire Services Institute). 미국 소방대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화재 및 인명안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의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Congressional Fire Services Institute)
1989년 설립된 미 의회 소방단체(Congressional Fire Services Institute). 미국 소방대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화재 및 인명안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의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Congressional Fire Services Institute) 이건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소방관이다. 월급을 떠나서 소방관이 수행해야 하는 대부분의 임무가 위험한 상황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는 전 세계 모든 소방관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오죽하면 미국의 소방관들이 "월급이 아닌 명예를 먹고 산다"라고 말하겠는가.

하지만 숭고한 운명을 받아들인 소방관들에게는 다양한 직업병이 도사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소음성 난청, 근골격계 질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암 등 특이질환들이 있다. 그래서 소방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다양한 기구와 단체들이 소방대원의 보건과 안전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해 오고 있다.

 소방관 5명 중 3명이 현장활동의 결과로 암 진단을 받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인포그래픽. (출처:Firefighter Cancer Registry)
소방관 5명 중 3명이 현장활동의 결과로 암 진단을 받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인포그래픽. (출처:Firefighter Cancer Registry) 이건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가 처음으로 소방대원의 직무와 암 질환이 관련이 있다며 그 연관성을 인정하는 소위 '암 추정법(Cancer Presumptive Act)'을 제정한 이후 현재까지 약 33개주에서 이 법안이 시행되고 있다.

주별로 보상범위와 기준이 다소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일정한 기준을 충족한 소방관이 암 진단을 받을 경우 산재보상(Workers' Compensation)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그 인과관계도 소방관이 아닌 국가가 직접 입증하도록 책임소재도 명확히 해 놓고 있다.

과거의 전통적인 화재와 달리 오늘날 발생하는 모든 화재는 화학사고로 간주해야 할 만큼 그 위험성이 심각하다. 우리 주변의 수없이 많은 제품들이 화학약품으로 처리돼 있어 이것들이 불에 타면서 발생하는 유해한 물질들, 예를 들면 다이옥신, 벤젠, 포름알데히드, 석면가루 등이 언제라도 현장 소방대원의 보건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미국에서는 '소방관 암 등록 법안(Firefighter Cancer Registry Act of 2018)'이 상원을 통과하고 대통령 서명을 기다리고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만 행사하지 않는다면 법으로 제정된다. 법이 시행되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서는 공식적으로 예산을 할당받아 소방관 암과 관련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아울러 기존에 각 주별로 수집해서 관리하고 있는 소방관 암 관련 통계와 자료들을 통합해서 관리하고 관련 기준을 만들어 누구라도 연구하고 참고할 수 있도록 일반에 공개할 방침이다. 이는 소방관의 암 질환에 대해서 국가가 통합해서 관리하고 그 정책을 주도해 나간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그동안 예산 문제로 관련 법 도입을 망설이는 주들도 한층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한편 '미국방화협회(National Fire Protection Association)'는 1987년부터 미국소방관 보건안전 기준인 'NFPA 1500 Fire Department Occupational Safety, Health, and Wellness Program'을 만들어 건강하고 행복한 소방관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미 연방 소방국(United States Fire Administration)'과 각 주에서도 소방관의 보건과 안전수준을 한층 높이기 위해 소방서 청사설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보너스 및 보상휴가 등 각종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소방관들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아울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부터 소방대원을 지키기 위해 소방서별로 동료 및 전문가 상담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병행하고 있다. 

소방서비스 전반에서도 단순 출동건수나 출동시간 등을 평가하는 정량적 평가에서 양질의 소방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성적 평가로의 전환도 현재 논의 중이다.

결국 미국 소방대원 보건안전 로드맵은 청사설계에서부터 교육·훈련, 현장활동, 소방수요 조사, 정책개발 등 모든 면에서 소방관의 보건과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도 "소방관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안전하다"라는 말이 큰 공감대를 얻고 있지만, 소방관들이 이런 변화를 현장에서 체감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존재한다. (관련 기사:  "아파도 아프다고 말 못해요" 소방관들의 눈물)

소방관의 건강과 행복지수가 지역사회의 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점을 간파하고 실천해 나가는 미국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 
#이건 소방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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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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