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내 목부터 쳐라"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혁신비대위 구성을 위한 준비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유성호
현 지도부를 유임하는 쪽으로 일단락되는 듯 보였던 한국당의 계파 갈등은, 그러나 혁신비대위의 역할 및 기능과 관련해 계파별로 서로 다른 주장들이 터져나오면서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 권한대행은 26일 준비위 첫 회의에 참석해 "혁신 비대위원장에게 한국당을 살려낼 칼을 드리고 '내 목부터 치라'고 하겠다"고 공언했다. 혁신비대위에 사실상 전권을 주겠다는 의미로, 강도 높은 인적 청산이 이뤄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이는 혁신비대위는 혼란에 빠진 당을 수습하는 역할만 하고 당 쇄신과 수습은 전당대회 이후 들어설 새 지도부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친박계와 당내 중진들의 입장과는 대비된다. 이들은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구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태다. 당의 상황을 감안해 비대위 체제는 불가피하더라도 그 역할은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박계와 당내 중진들의 반발은 김 권한대행 등 복당파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가 혁신비대위를 통해 당권을 장악하고 인적 청산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강한 불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김 권한대행이 이날 회의에서 "(비대위에 주어질) 이 칼은 2020년 총선 공천권에도 영향을 주는 칼"이라고 밝히면서 이같은 의구심이 더욱 증폭되는 양상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김 권한대행이 이날 혁신비대위원장 인선과 관련해 지난 2016년 초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 영입돼 4·13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이름을 언급했다는 사실이다. 김 권한대행은 이날 "(혁신 비상대책위원회는) 김종인 모델보다 더 강해야 한다"며 "남의 당이라도 배울 건 배워야 제대로 된 비대위원장을 모실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6년 4·13 총선 직전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표가 영입해 세간을 놀라게 만들었던 김 전 비대위원장을 거론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김 전 비대위원장은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깜짝 영입됐다. 이후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바탕으로 당내 인적 쇄신을 단행하며 화제가 됐다. 당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던 정청래, 이해찬 의원 등이 이 과정에서 '컷오프' 당하며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찬 잡음, 셀프공천 논란 등 크고 작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가 민주당의 총선 승리에 적잖이 기여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한국당은 지방선거 참패 이후 풍전등화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김 권한대행이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공천권 관련 발언을 한 데 이어,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었던 김 전 비대위원장을 함께 거론한 것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는 김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한 복당파가 혁신비대위를 통해 당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대대적인 물갈이를 시도할 것이라는 친박계 및 중진 의원들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함의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당내 혁신작업을 강하게 비판해왔던 친박계와 당내 중진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선 것도 그런 맥락일 터다. 그들은 김 권한대행의 발언이 결국 혁신비대위의 성격과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 하다. 홍 대표가 사퇴한 이후 당권을 거머쥔 김 권한대행을 앞세운 복당파들이 친박계를 겨냥해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나설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당 수습방안을 놓고 펼쳐지고 있는 첨예한 당내 갈등은 결국 차기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친박계와 비박계 사이의 '치킨게임'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던 '친이-친박'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정치권 안팎으로부터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왔던 극심한 계파 갈등이 결국 한국당을 집어삼키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초·재선 의원들과 복당파 중심의 3선 의원들이 지도부를 재신임하며 간신히 봉합되는 듯 했던 한국당의 집안싸움이 다시 들불처럼 번질 태세를 보이고 있다. 이 모습은 흡사 지난 2008년과 2012년 총선에서 벌어진 친이계와 친박계 간의 끔찍한 공천학살, 2016년 총선에서의 낯뜨거운 옥쇄파동을 떠올리게 만든다. 총선 때마다 연출됐던 볼썽사나운 계파 싸움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막강한 조직과 세력, 단단한 지역기반을 바탕으로 보수진영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면, 작금의 한국당은 그와는 정반대의 궤멸적 상황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말해주듯 한국당은 TK지역에 완전히 고립되며 당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궁색한 처지로 전락했다. 벼랑 끝에 서있는 줄도 모르고 해묵은 계파 싸움에 푹 빠져있는 한국당에게 어떤 미래가 닥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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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입에서 '김종인' 이름이 호명됐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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