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승계 당시의 이사벨 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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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이 아르헨티나 역사의 분기점인 이유는, 그 전년도의 대공황으로 경제가 무너지면서 군부 쿠데타가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대공황과 함께 아르헨티나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던 것이다.
대공황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주도했던 자본주의 체제의 총체적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기존 방식으로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음을 보여준 경고였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 제3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1929년 10월 월가의 추락으로 촉발된 대공황이 선진국을 강타했는데, 그 엄청난 충격은 역사상 최대였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에서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노동인구가 일자리를 잃었다. 모든 나라가 19세기에 그리고 1930년대 초까지 정부가 경제에 간섭하지 않는 자유방임주의를 고수했는데, 이 전통적인 교리는 영구적으로 신뢰를 잃었다."대공황으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이 시대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가 가진 특징 중 하나는, 세계의 여타 지역을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강제로 재편했다는 점이다. 세계의 여타 지역을 자신들에 대한 식량 및 원료 공급처로 만들고 자기네 공산품 및 금융상품 판매처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제국주의 국가도 아니면서 이런 체제에 편승해 부를 축적한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포진한 유럽에 곡물을 수출하고 거기서 공산품을 수입하는 방법으로 아르헨티나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런 식의 무역구조를 가진 나라들이 일방적 착취를 당하던 시절에 아르헨티나는 특이하게도 제국주의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부를 축적했다. 그렇게 거둔 성공이 대공황과 함께 물거품이 되면서 1930년부터 만성적 위기를 겪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경제가 무너진 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경제가 몰락했음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페론 정권이 서민들한테 복지 지출을 늘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경제가 안 돼 서민들의 노동 소득이 감소할 때는 정부가 복지 지출을 늘려 서민들의 생계를 보장해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 서민들의 반란을 막을 수 있으므로, 이런 복지 지출은 사실은 부유층의 안전을 돕는 길이다. 페론 정권은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대공황과 함께 시작된 아르헨티나의 몰락은 제국주의식으로 세계를 착취하는 게 더 이상 힘들 뿐 아니라 그 체제에 편승해 수혜를 보는 것도 더 이상 힘들게 됐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페론 정권은 대공황으로 몰락한 아르헨티나를 수술해보려다 실패했을 뿐이다. 1992년에 <지역연구> 제1권 제2호에 실린 논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페론주의의 등장은 1929년 대공황과 그에 따른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붕괴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 임현진의 '아르헨티나의 정치발전과 사회변동' 중에서'페론주의'는 죄가 없다아르헨티나 정치권력이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헤게모니를 상실했고, 이것이 페론주의라는 새로운 해법의 등장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르헨티나 경제가 망한 것은 페론 정권 때문이 아니라 제국주의 경제의 몰락과 이에 대한 대응의 실패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보수파들은 이사벨을 비롯한 세 명의 페론 때문에 아르헨티나 경제가 망한 것처럼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정부가 대중을 위해 복지 지출을 늘리면 아르헨티나처럼 망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풍문을 퍼트리고 있다.
하지만, 세 명의 페론으로 인해 드러난 객관적 진실은, 복지정책이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라는 점뿐이다. 복지 지출을 늘려서 아르헨티나 경제가 망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고치지 않아서 아르헨티나 경제위기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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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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