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조각가의 조언 "움직이면서 생각하세요"

[인터뷰] 상처를 아름답게 다듬는 이윤복 조각가

등록 2018.07.02 10:50수정 2018.07.0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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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아티아키(ArtiArki)’갤러리에서 이윤복 조각가가 그의 작품 옆에서 포즈를 쥐했다.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아티아키(ArtiArki)’갤러리에서 이윤복 조각가가 그의 작품 옆에서 포즈를 쥐했다. 김희정

이천시청과 이천아트홀 사이 정원에 가면 맑은 물빛을 발하는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이윤복(47) 조각가의 <끝없는 영원(Timeless Eternity. 2010)>이다. 이 작품은 깊이를 측정할 수 없이 깊어 보인다.

강하고 날카롭고 딱딱한 속성을 가진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고 매끄럽다. 말랑말랑한 흙을 주물러 만든 것처럼 유연함 속에서 생기 있고 힘찬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작품의 단단함 저 너머에 있는 무엇을 상상하게 한다.


지난 6월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아티아키(ArtiArki)'에서 이윤복 조각가를 만났다. '아티아키(ArtiArki)'는 건축을 전공한 그의 아내 조안 첸(소요헌)이 그림, 조각작품 등 현대미술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갤러리다.

"작품에 우리 삶의 과정과 기억,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으려고 했어요. 다른 사람 눈에 근사하고 멋지게 보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생의 어느 지점에서 상처 속에서 아파하죠.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또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는 과정을 통해 뾰족하고 모난 부분이 깎이면서 조금씩 둥글어지고 단단해지잖아요."

중•고등학교 시절 이윤복은 괴이하고 엉뚱한 행동을 하며 보냈다. 그런 그를 친구들은 '예술가'라고 불렀고 그도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그림 그리는 솜씨가 탁월했고 손재주는 남달랐으며 그림 외에 다른 길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예술적 에너지는 넘치는데 그것을 작품으로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 어떻게 작업으로 이어가야 하는지 등을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겉모습이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예술가 흉내를 내면서 남과 달라 보이고 싶었던 거죠."

서울에서 나고 자라 십대를 그렇게 보낸 이윤복은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를 다녀온 뒤에도 기이하고 독특한 행동을 이어갔다. 그런 그에게 예술에 대한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우연히 작업실에서 목조(木彫)작업을 하고 있는 한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아티아키(ArtiArki) 갤러리에서 전시중인 미셀 주(Michelie Chu) 작가의 "돌아가다.." 미셀 주는 미국에 머물면서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 맑은 순수와 그리움, 자유에 대한 갈망과 희망 등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 전시회는 오는 7월3일까지. 아티아키에서는 그림, 조각 등 다양한 작가의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아티아키(ArtiArki) 갤러리에서 전시중인 미셀 주(Michelie Chu) 작가의 "돌아가다.." 미셀 주는 미국에 머물면서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 맑은 순수와 그리움, 자유에 대한 갈망과 희망 등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 전시회는 오는 7월3일까지. 아티아키에서는 그림, 조각 등 다양한 작가의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김희정

"가냘픈 여학생이었어요. 매일 끌하고 망치로 나무를 파고 두드리더군요. 무의식적으로 그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늘 그대로인 것 같더군요. 6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여학생이 깎고 두드린 나무가 멋진 형상으로 변해 있었어요. 충격이었죠. 예술은 서두른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예술은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는 답을 주지 않더군요. 예술은 애정을 가지고 충분한 시간과 끊임없는 노력을 쏟으면서 기다리는 자에게 답을 줍니다."


예술에 대한 시각이 바뀌면서 그는 목조, 테라코타, 석조 등 다양한 분야의 조각을 다뤘다. 1997년 경원대학교 환경조각과를 졸업하고 경원대학교 대학원 환경조각과에서 스테인리스 스틸로 작업을 시작했다. 2003년 동경예술대학 조각과 연구생으로 조각과 예술에 대한 견문도 넓혀갔다.

그러면서 작가는 2001년 놀이시설 디자인공모 대한주택공사 우수상 수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고 다양한 아트페어에 작품 출품은 물론이거니와 서울, 홍콩, 미국 등 국내와 해외에서 개인전, 초대전, 그룹전을 수차례 가졌다. 2010년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초대작가에 이어 2012~2016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추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제 작품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제 손으로 만들었지만 알 수 없는 누군가 제 손안에 들어와 같이 만들었다고 할까요? 철 덩어리를 두드리고 그 덩어리를 조합하는 제작 과정에서 전혀 상상하지 못한 작품이 나올 때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하나의 단순한 입체조형물 같은 이윤복 작가의 작품은 실은 여러 개의 스토리가 담긴 여러 개의 작품을 이어 붙여 제작한 집합유기체다. 평면인 스테인리스 스틸을 자르고 망치로 두드리고 불로 용접하고 사포질을 하여 광을 내는 등, 오랜 시간에 걸친 지난하고 힘든 노동을 통해 상처를 드러내고 꿰매고 어루만지며 치유한 산물이다.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아티아키(ArtiArki)’에 있는 이윤복 조각가의 작품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아티아키(ArtiArki)’에 있는 이윤복 조각가의 작품김희정

작가는 이천시 장호원읍에 작업실을 두고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실은 마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어 스물네 시간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20년 이상,  쉼 없이 조각 작품을 해온 작가는 조각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

"움직이세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다양하고 많은 생각은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무슨 일이든 움직이면서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서툴면 서툰 대로, 좋은 재료가 없으면 없는 대로, 미완성이면 미완성인 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시작해보라고요.

조각은 힘들고 고된 노동이에요. 달콤한 이론과 현장의 괴리감도 크죠. 그럼에도 한 곳에 몰입하여 쏟은 땀과 에너지, 치열한 집념과 노동을 통해 얻어진 가치는 직접 해본 사람만이 얻을 수 있어요. 시간이 흘러 작품을 통해 그것을 느끼고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계시고요. 움직이세요." 

이윤복 작가에게 '조각은 친구이자 동반자, 선생님, 길'이다. 조각을 통해 작가의 삶의 가치관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그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면서 또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품과 또 내면의 자신과 끊임없이 교류한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또 변함없이 작업실로 향한다. 작가는 늘 그래왔듯이 욕심부리지 않고 성실하고 일관성 있는 자세로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는 생의 어느 한 날 우연히 마주친 이윤복 작가의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들을 것이다. 조각 작품이 마음으로 전하는 말을.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아티아키(ARTIARKI) #동경예술대학 #현대미술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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