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모두'. 우리는 '모두'라는 한글로 적는 여러 한자말을 굳이 알거나 사전에 실어야 할까요?
국립국어원
불교에서 쓴다는 '모두(毛頭)'는 불교 전문용어로 여겨야 할까요? 아니면 불교에서 앞으로 쉽게 고쳐쓸 낱말로 삼아야 할까요? 절에서 머리카락을 미는 일을 굳이 '모두·모도'라 해야 하는지 곰곰이 따질 노릇입니다. '머리밀기'나 '머리깎기'처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낱말을 쓰면 불교라는 길을 가기 어려울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정치를 맡는 일꾼이나 대학에서 가르치는 분은 으레 '모두(冒頭)'라는 일본 한자말을 씁니다. 이 일본 한자말을 털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랫동안 흘렀으나 이 한자말은 일본 한자말이 아닌 '토론·의회·회의 전문용어'로 여기는 분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한자말 '모두'는 전문말일까요? '글머리·말머리' 같은 쉬운 한국말은 전문말로 삼기 어려울까요? 어린이도 할머니도 알아듣고 함께 쓸 수 있는 쉬운 한국말은 전문말이 되어서는 안 될까요?
묘(墓) : = 뫼
묘지(墓地) : 1. = 무덤 2. 무덤이 있는 땅. 또는 무덤을 만들기 위해 국가의 허가를 받은 구역 ≒ 총지(塚地)
뫼 : 사람의 무덤 ≒ 묘(墓)·탑파(塔婆)
무덤 : 송장이나 유골을 땅에 묻어 놓은 곳. 흙으로 둥글게 쌓아 올리기도 하고 돌로 평평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대개 묘석을 세워 누구의 것인지 표시한다 ≒ 구묘(丘墓)·구분·구총(丘塚)·만년유택·묘지(墓地)·분묘(墳墓)·분영(墳塋)·유택(幽宅)·총묘(塚墓)
'묘·묘지'하고 '뫼·무덤'이라는 낱말을 헤아려 봅니다. 사전을 곰곰이 살피면 '묘'는 "→ 뫼"요, '묘지'는 "→ 무덤"이로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라에서는 '나라무덤' 같은 이름을 안 씁니다. '국립묘지'처럼 한자말을 씁니다. 쉬운 한국말이 아닌 꺼풀을 씌운 한자말을 써야 하는 줄 여겨요. 한자말만 전문말일 뿐 아니라, 한자말이어야 높이 섬기는 줄 여깁니다.
사전 뜻풀이를 더 보면, '무덤'이라는 쉬운 한국말에 갖은 한자말을 비슷한말이라며 덕지덕지 붙이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덕지덕지 덧달아 놓는 한자말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저런 말을 굳이 써야 할까요? 저런 말을 쓰지 않는다면 무덤을 앞에 두고 제대로 나타낼 말이 없을까요?
이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 말 한 마디도 곰곰이 생각하고 찬찬히 헤아리며 가만히 살펴서 해야 할 때입니다. 몇몇 못난 사람만 나라를 어지럽히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전문용어라는 사슬'도 나라를 어지럽힌 줄 느낄 때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전문가라는 이름을 거머쥔 어른들은 '전문용어라는 주먹질'을 마구 휘두릅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이 저마다 전문가로서 전문용어를 쓰니, 어린이나 푸름이는 이런 어른을 고스란히 따라서 '끼리끼리 쓰는 말'을 자꾸 지어냅니다. 전문말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전문가 사이에서 끼리끼리 쓰는 말입니다.
눈을 들어 이웃나라를 바라보아야 해요. 중국이나 일본을 넘어서 온누리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해요. 온누리를 가로지르는 말이 '전문가 사이에서 끼리끼리 쓰는 말'이면 모두 평화나 민주나 평등하고 어긋납니다. 온누리를 아우르는 말이 '여느 삶자리에서 비롯한 쉽고 수수한 말'로 깊거나 넓은 전문 자리를 다루거나 나타낼 적에는 모두 평화나 민주나 평등으로 날개를 폅니다.
철학이든 의학이든 과학이든 공학이든 농학이든 정치이든 경제이든 교육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전문가라는 자리를 권력 아닌 평화·민주·평등으로 바라보는 눈이 있다면, 누구도 넘볼 수 없도록 담을 쌓는 전문말을 쓸 일이 없습니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쉽게 나누면서 쉽게 즐길 살림말이나 삶말을 쓰겠지요.
책을 짓는 사람들은 '도비라·세네카' 같은 일본말을 쓸 줄 알아야 마치 '책 짓는 전문가'인 줄 잘못 압니다. 아무것도 아닌 쉽고 수수한 일본말인 '도비라·세네카'를 가볍게 털어내어 우리 삶자리에서 널리 쓰는 낱말로 고칠 줄 아는 작은 몸짓으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모두 발언을 하겠습니다"가 아닌 "첫머리를 열겠습니다"나 "첫마디를 하겠습니다"나 "첫말을 펴겠습니다"나 "여는 말을 하겠습니다"처럼 고쳐쓸 줄 안다면, 때나 자리에 맞는 새로운 말씨를 한결 넓게 북돋우거나 가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