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사업자 업종별, 연령대별 창업 현황(2015-2017)
국세청 통계연보(2015-2017) 자료 편집
국세청의 표준산업분류 14개 업종 가운데 5개(부동산임대업, 서비스업, 음식업, 도/소매업) 업종이 전 연령에서 공통적으로 5위 안에 들어갔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임대수입을 목적으로 한 사업이 우리 국민이 선호하는 업종 5위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은퇴 후(60세 이상)는 그렇다 치고, 경제활동 연령대인 50대(1위), 40대(2위), 30대(4위) 심지어 30세 미만(5위)에도 부동산임대업이 상위에 포진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드러내 주는 단면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현상이라 판단된다.
벼랑 끝 자영업, 퇴직자들의 무덤어제도, 오늘도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자영업에 관한 이야기들은 온통 우울한 내용들뿐이다. 우리는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토로하는, 하지만 아무런 답도 제시하지 못하는 공허한 기사들을 매일 접하며 이런 현실을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소기업 자영업 생태계가 높은 임대료와 낮은 진입장벽, 지나칠 정도의 과밀화와 과당경쟁 등 여러 구조적인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글과 같은 곳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인 임대료 상승을 막고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관련 법률의 제/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정쟁에 묻혀 아직까지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또한 백화점, 면세점 등 대기업(100만 원 기준 0.01%)에 비해 100배나 많은 중소상인 카드수수료(100만 원 기준 1%)도 조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의제 해결은 모든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길고, 오랜 숙원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일자리 문제다. 자영업 시장의 과밀화를 막으려면 좋은 일자리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든 직장 밖으로 밀려나온 사람들은 어떻게든 먹고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 본인 스스로 밥벌이를 하는 것. 개인이 사업주체가 되어 경영하는 사업. 즉, 자영업(自營業)에 종사하는 것뿐이다.
작금의 상황은 직업을 구하지 못한 청년부터 직장에서 쫓겨난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생존율이 현저히 낮은 자영업 시장 속으로 '생존을 위해' 떠밀려 들어가고 있는 형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은 한, 어떤 정책도 이 시장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표면에 나타난 증상만 보고 치료하는 대증요법으로는 병의 원인을 제거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영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여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부의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일 가정 양립, 양성 평등 등 지금 우리 사회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 주제들은 마땅히 큰 관심과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사안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유독 자영업자 문제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주변부에 방치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무슨 이유일까. 이 문제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의제들이 많다고 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보다 급하고 중한 사안이 있을까.
정년 연장과 일자리 나눔 등을 통해 경제활동인구 중 다수가 일터에 오래 머물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이는 바람일 뿐, 한계가 클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비자발적 퇴직자들이 이 영역에 들어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자기 사업을 희망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퇴직 후 일정 기간 동안 교육훈련 과정을 통해 자영업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준비를 시키는 프로그램(post-retirement training program)을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정부와 민간 영역에 창업과 관련된 프로그램은 차고 넘칠 만큼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내용이나 효과는 논외로 하더라도, 대부분 '개별적 존재로 살아남기 위한 각자도생의 길'만 가르치고 있다. 10개가 생기고 8개가 없어지는 자영업 시장에서, 남은 2개의 주인이 되는 비법을 전수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인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소기업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체계를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 예비 창업자들을 위한 준비 프로그램은 중앙이 아니라 지역(local)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선배들이 스승이 되어, 후배들이 만든 사업 아이템을 살펴봐 주고, 혼자보다는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며, 기업가들이 지역에 잘 안착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지역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소기업 자영업을 위한 지원체계를 만들어갈 때, 꼭 필요한 존재가 바로 현장 지원기관이다. 뉴욕 투어를 통해 확인되었듯이, 지원 생태계의 핵심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지역 특성에 맞추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현장기관들이었다. 지역마다 산업 기반이 다르고 자영업 환경이 다르므로 지역 현실에 맞는 지원 방법을 수행하려면 지역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기관들이 존재해야 하며, 이들이 정부와 당사자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어야 생태계는 활성화될 수 있다.
지역 내에서 소기업 소상공인을 지원한다는 것은 개별 기업들을 살리는 것(점)을 넘어 기업과 기업을 잇고(선), 지역 내에 존재하는 여러 이해관계자들 간에 협력과 연대를 이끌어내는(면) 작업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현장 지원기관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중심(hub)이 되고 개인, 기업, 정부 등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참여하여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열린 플랫폼(platform)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긴 안목에서 이 생태계를 바꿀 수 있는 청사진이 필요하다.
바야흐로 상생과 협력의 시대다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 시장질서에 대한 대안으로, 호혜와 연대에 기초한 사회적경제(social economy)가 주목받고 있다. 자영업 시장은 고밀도와 치열한 경쟁구조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swim or sunk)' 기존 방식이 아닌 더불어 함께 공존하는(living together) 질서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곳보다 절실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공동시설 이용, 공동 운영시스템 개발 등 기업 간 협업(collaboration)을 통해 소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고, 소상공인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cooperative) 기업을 만들어 자조, 자립의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사업 참여자들이 함께 성공 신화를 써갈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지원정책이 따라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혼자만 살겠다는 독생(獨生)보다 같이 사는 상생(相生)이 훨씬 지속가능한 방법임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